저녁의 꼴라쥬

8월 2일 설교, 로마서 14장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8월 2일 설교, 로마서 14장

jo_nghyuk 2022. 8. 1. 23:45
8월 2일 화 새벽기도회 
찬송 286장 (통 218)
  •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말씀: 로마서 14장
  • 비판하지 말라
 
오늘 바울의 주제는 서로의 다른 신앙의 모습을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먹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 채소만 먹는 사람을 믿음이 약한 사람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그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다가 시장에 나온 것이지만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그 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는 그 고기가 바로 우상에게 바쳐졌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서로의 관점이 다릅니다. 한 사람의 관점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이 고기를 먹습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은 그럼에도 우상의 제사에 사용되었던 고기이기 때문에 먹을 수 없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고기를 먹는 사람이 과연 믿음이 좋은 사람인가? 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오히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니 신앙이 더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고기를 먹는다고 좋은 신앙인인 것도 아니고,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좋은 신앙인인 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기를 먹는 것이나 먹지 않는 것으로 신앙의 척도를 매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주장하는 좋은 신앙의 척도는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자신의 신앙과 이웃의 신앙의 양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어떻게 배려하고 받아들이는가가 좋은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긴다면 그 믿음은 좋은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먹는 자를 정죄한다면 그 믿음도 좋은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믿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쓰인다면 그러한 믿음은 좋은 신앙인의 믿음이 아닙니다. 공동체성을 결여한 믿음은 신념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신념은 스스로 가지고 있되, 한 분 주 예수를 믿는 믿음에 있어서 우리는 ‘내가 보기에는’이라고 하는 이 관점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이 뒤로 물러선 만큼 다른 이웃이 숨을 쉴 수 있고, 공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기를 먹어도 예수를 믿을 수 있고, 고기를 먹지 않아도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담대함의 문제이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연약한 사람을 받으셨다고 표현합니다. 오히려 4절에서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고 묻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우리가 다루었듯이, 우리에게 모든 은사가 주어졌지만, 판단의 은사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판단하라고 명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연약한 형제 자매를 서로 받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심판의 은사가 아니라 사랑의 은사입니다. 화합하기 위해 나의 관점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접어두는 희생의 은사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누구를 두고 한 것입니까? 고기를 먹는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그를 그렇게 연약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믿음이 강한 자도 있고, 연약한 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연약한 자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하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하신 분이 희생하신 이유는 가장 연약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 말했습니다. 심판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 날에 모든 중심을 살피시고 각 사람이 있는 것을 그대로 고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로마서 14장은 믿음이 강한 자들을 권면하기 위해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들의 믿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믿음도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사로 받은 믿음을 가지고 형제를 업신여기고 근심시킨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형제를 넘어뜨리는 자라고 바울은 경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이 선물로 주신 은사이지 나의 행위가 아니며, 이웃을 판단하기 위한 척도는 더더욱 아닙니다. 
믿음의 강한 자들은 권리포기의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먹는 것으로 인해 내 형제가 넘어진다면 그 사람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무관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즐거움과 상관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다 함께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연약한 자들이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18절에서 그 결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연약한 자들이 천국 잔치에 들어오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세워주기 위해 내 권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21절을 봅시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아름다운 신앙인이란 내가 무엇을 누릴까를 염려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이 내 형제를 거리끼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내 형제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근심의 방향은 자기 자신의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형제 자매의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이 강할 것을 독려합니다. 믿음을 따라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22절을 보면, 스스로에게 있는 믿음을 스스로 가지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바울이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중보의 지점에 설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약한 이들이 실족하고, 의심 가운데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믿음이 강한 자들이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내 믿음이 하나님의 은사라는 것을 고백하고, 나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분명히 말하자면 영적 교만이며,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악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빠른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율법 두 돌판을 주시던 때에 이미 역사가 끝장이 나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믿음 좋은 사람들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시고 우리는 더이상 거기에 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약하고 느린 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건져서 그들과 함께 천국 도성으로 나아가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약하고 느린 자들을 건질 수 있는 이들은 먼저 믿은 자들이며 믿음이 견고해진 자들입니다. 믿음이 견고해진 자들은 소망과 사랑을 단련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진리 앞에서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을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우리 혀가 진실된 것을 주께 자백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내가 내 형제를 업신여겼습니다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내 형제를 판단했습니다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는 나의 믿음이 강한 것으로 약한 자를 정죄했습니다.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살다가 천국에서 부끄러운 일이 없으려면, 지금 내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일을 내 마음과 상관없이 순종해야 합니다. 
그 날에 우리가 보십시오, 내가 내 형제를 용서했습니다. 내가 내 형제를 받아주었습니다. 라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그때 주께서 우리에게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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