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11일 설교, 고린도전서 5장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8월 11일 설교, 고린도전서 5장

jo_nghyuk 2022. 8. 11. 18:20
8월 11일 목 새벽기도회
찬송 510 통 276
  • 하나님의 진리등대
말씀: 고린도전서 5장
  • 누룩을 제거하라
 
5장에서는 바울이 판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전까지는 서로 정죄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서로 심판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하던 바울이 5장에 들어서는 너희 속에 있는 죄를 판단하여 그 죄를 없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도 하지 않는 음행의 죄가 고린도 교회 공동체 가운데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떤 이가 자신의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건을 의미하는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것에 대해 애통하지 않았고, 그 죄를 방치해두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교만하여져서 그 죄를 애통하지도 않고 그 일 행한 자를 버젓이 교회에 나오게 두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어제 4장까지는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판단은 교만은 아닙니까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4장까지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지 않을 때 판단하는 것이 교만이라고 했다면, 이제 5장에서 말하는 교만은 하나님께서 지금 싫어하시고 판단하는 그 죄를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교만입니다. 
인간의 판단은 늘 하나님의 판단 아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분별이 하나님에게 속해야 교만을 피할 수 있습니다.
 
4-5절은 어쩌면 바울 서신 중에 가장 강력한 어조의 말로 선포되는 권위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이 말은 더이상 교회의 보호,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는 그 말씀을 하신 것처럼, 바울의 말에는 큰 권세가 있습니다. 바울은 주의 사신 몸을 지키기 위해서 판단해야 할 사람을 판단합니다. 
우리가 교회나 선교단체들 가운데 죄가 드러났을 때 그 죄를 회개하고 애통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그 죄가 교회나 선교단체들을 쇠락시키는 것들을 역사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결정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판단의 결정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죄 지은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그가 교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징계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그를 더이상 교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는 더이상 거룩함을 위해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되고 세상 유혹에서 보호받을 기회를 잃게 됩니다. 대신 주 예수의 날에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바울이 말하는데 이는 그를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암시를 줍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과 인애하신 자비가 함께 보여집니다. 
 
교회 안에 징계가 있고 출교라고 하는 최후의 수단이 있는 것은 6절에서 말하듯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이 회개하지 않은 죄는 교회 공동체 전체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린도 교인들이 그 일에 대해 심히 애통하며, 그 사람을 징계하였더라면 바울이 오늘 이렇게까지 강한 어조로 그 사람을 출교하는 결의를 하였을까 저는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죄는 교회에 버젓이 방치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될 정도로 죄가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 죄가 더이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도록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을 내쫓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누룩을 말하면서 유월절 양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해 7절에서 이야기합니다. 이는 출애굽의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먹고 유월절 양을 잡아 문설주에 바른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룩으로 부풀지 않은 순수한 무교병을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출 12:11에서 명령하십니다. 누룩을 쓰지 않는 상징은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않는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급히 먹는 상징은 그들이 애굽으로 상징되는 세상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즉시 떠나야 하는 긴급성을 상징합니다. 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뒤를 돌아보지 말고 급히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39를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지체하지 말고 세상에서 돌이켜야 하는, 죄로부터 떠나야 하는 긴박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시기에 누룩을 넣어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하나님은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바울은 공동체 안에 죄의 누룩을 부풀게 하는 사람을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엄히 명령합니다. 그래서 8절이 말하듯 묵은 누룩, 즉 오래된 죄의 누룩도 버리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 서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누룩도 제거하여 순수한 말씀의 떡만 남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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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울이 이 세상 죄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 죄로부터 긴박하게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를 짓는 이들이 공동체 안에 있다면 그들과 교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교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교인들이 그러한 죄의 누룩을 만들 때에 공동체의 순수함을 위해 그들을 당연히 판단하는 권세를 부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가 오늘 성경에서 말하듯이 여전히 자신의 음행과 탐욕과 우상숭배와 모욕과 술취함과 거짓증언을 일삼고 있다면 그를 징계하여 교회를 살리고 그 영혼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징계는 그의 마음과 육신을 아프게 하여 그의 영혼을 구하는 행위입니다. 징계는 죄를 죄라고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을 신경쓰다가,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죄를 방치하고, 내버려두면 교회는 거룩함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 세상과 구별점이 사라지고 사람의 마음은 얻었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놓칠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도 속하고 세상에도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을 살지만 하나님의 시민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도 짓고 용서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멸하심을 믿고 죄와 싸우는 존재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바로 이 거룩함을 향한 분투함에 있고, 구별되어짐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음행과 탐욕과 우상숭배와 모욕, 술취함과 거짓증언으로부터 자유하십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에 대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그리고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에게로 간다면, 우리는 누룩을 제거하는 데에 있어서 담대해야 하고 싸움에 있어서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맞설 것은 맞서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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