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고린도전서 15장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고린도전서 15장

jo_nghyuk 2022. 10. 6. 00:25
10월 6일 목 새벽기도회
찬송 350 통 393
  • 우리들이 싸울 것은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도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인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도 성경에 쓰여진 대로 이루어진 일인 것처럼, 예수께서 다시 사신 것도 성경에 쓰여진 대로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먼저 베드로와 열두 제자에게 보이시고 가장 마지막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기도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에 이 15장을 가지고 했는데,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바울은 왜 자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표현했을까요? 그러자 어떤 형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셨는데, 바울에게는 그런 실체를 보여주지 않으셔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바울은 분명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서에 맨 마지막일지언정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육체를 가지시고 나타나신 것은 맞지만, 바울은 빛으로 만난 예수님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난 방식 때문에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자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8절의 만삭되지 못하여 나왔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앞에 열거한 사람들은 만삭되어 나왔다는 것이 됩니다. 그들과 바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어지는 9절에서 바울이 증거합니다: 나는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이 말은 바울이 온전한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했던 사람었다는 고백입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그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났습니다. 자신이야말로 사도라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자임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오셨습니다. 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로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동시에 바울은 주님이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과 힘을 다해 수고하는 것은 상충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수고하지 않고 받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혜를 받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은혜가 헛되게 되지 않도록 수고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힘을 다한 그 수고 또한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여 가능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은혜는 충성하게 합니다. 은혜는 힘을 다해 수고하게 합니다.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 은혜를 소홀히 하거나 헛되이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은혜를 고백하는 것은 다시 죄를 지어야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의 가치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죄와 싸우는 몸부림을 통해서 더 잘 고백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몸부림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는 부활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만 하셨다면, 우리는 계속 죄를 짓고 죄사함 받는 순환에 갇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죄를 이기셨습니다. 무덤을 깨뜨리고 일어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이 승리가 없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도 고백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가 전하는 것도 헛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17절. 
그러나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이유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옵니다. 죽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의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살았음을 또한 선포하는 것이죠. 우리가 믿는 신앙은 부활 신앙입니다. 
그래서 33절에서 바울은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34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너희 중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속는 자입니다. 잠들어 죄를 계속 짓는 자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죄와 싸우지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바울은 33절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라고도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육의 몸으로 심어야 영의 몸으로 부활한다고 44절에서 고백합니다. 심는다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육의 몸으로 심는다는 것은 내가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살아가지만 더이상은 육체의 정욕에 매여 살지 않기로 결단하며, 나는 그 육신적인 죄에 대해 매일 죽기로 결정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몸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육적인 것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43절에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육체의 정욕은, 세상의 즐거움은 다 썩어질 것들입니다.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바울이 50절에서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다시 말해 이러한 썩어질 세상의 것들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결코 얻지 못하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육체 가운데에서도 힘써 싸워 승리하며 깨어 있는다면, 하나님은 이 연약한 육체에, 썩어질 것에, 썩지 않는 것으로 입혀주신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싸우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연약한 중에도 순종하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바울의 58절 권면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바울은 힘을 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수고는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주의 은혜를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바울은 힘을 써서 수고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은혜를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신앙을 지키고 의를 지키려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라. 주께서 연약한 너의 육신에 강하게 도와주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육신의 요구대로 산다고 우리 영혼이 만족하지 않습니다. 육적인 정욕, 세상의 정욕과 싸울 때에 주께서 영적인 것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덮어주실 때에 참된 만족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거부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부활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을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면 육체를 잃어버리고, 육신의 정욕을 버리면 부활 신앙 가운데 육체가 온전히 회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힘써 싸우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승리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오늘도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