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11월 11일 저녁설교, 고린도후서 3장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11월 11일 저녁설교, 고린도후서 3장

jo_nghyuk 2023. 1. 9. 18:23
11월 11일 금 저녁기도회
찬송: 552장 통 358
  • 아침 해가 돋을 때
말씀: 고린도후서 3장
  •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당시 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신분을 증명하는 카드가 아니라 어떤 중요한 인물의 추천서가 그 사람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기능했습니다. 추천서가 없이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바울은 사도들의 추천서는 바로 교회의 구성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지도자의 교회가 지도자를 알아볼 수 있는 추천서로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들의 편지라고 2절에서 표현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우리가 볼 때, 바울이 그 교회가 자신의 추천서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리스크가 커 보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영적 현실을 보고, 그들의 모습이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사람들은 바울을 긍정적으로 볼까요, 부정적으로 볼까요? 
그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추천서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하시는 선포와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너는 거룩하다. 
저는 역설적으로 고린도 교회가 자신이 바울의 추천서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워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화는 부끄러움을 아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거룩하지 않은 자에게 거룩하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판결만이 아닙니다. 내가 거룩하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거룩하다 말하시면, 우리는 오히려 부끄러움에서 출발해야 성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나 예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나를 거룩하다 말하시면 나는 거룩하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추천서라 말할 때에 바울의 말과 선포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 죄인들의 집단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거룩하게 하신 의인들의 모임입니다. 이는 단순히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의 현실에 들어갔음을 믿을 때, 부끄러움과 감사에서 성화가 시작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편지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것을 믿습니다. 그 편지는 성령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이 말은 고린도 교회가 이루어가는 성화가 자신들의 힘이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바울이 우리의 만족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만족이 나로부터 나오는 삶은 모든 일의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나로부터 나오고 성취의 기준도 나로부터 나오는 삶입니다. 그러나 만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모든 일의 판단과 행동과 성취의 기준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한 것에 대해 내가 만족하거나 이것이 완전하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기준이 하나님이 되는 순간, 우리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신자의 길은 멈춰있지 않으며, 늘 부르시는 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걸어가는 길은 결코 무거운 길이 아닙니다. 바울은 새 언약은 살리는 언약이라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율법이 명하는 모든 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지키지 못한 율법 앞에서 정죄를 받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그 정죄의 기능으로 사람을 죽이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새 언약은 성령의 살리는 언약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위해, 회개하고 믿고 나오는 자에게 성령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십니다. 연약한 내가 살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되지 않는 것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손들고 나오는 자에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고, 필요한 능력과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완성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서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복음에는 더 찬란한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영광은 사라져가는 옛 영광이요, 복음의 영광은 날로 새로워져 가는 영광이라고 표현합니다. 율법이 사라져가는 영광인 이유는,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심으로 인해, 율법이 옛 언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이 사라져가는 영광에 주목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을 모세의 수건에 비유하는데,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십계명의 두 돌판을 받고 내려온 후에, 하나님에게서 받은 율법의 영광이 강력해서 수건을 머리에 씌워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세가 수건을 쓴 이유는 바로, 이 사라져갈 영광인 율법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세의 얼굴의 영광을 보면, 모세에게 주목할 것입니다. 또 모세의 율법의 영광에 주목할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들이 율법의 영광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제 이 수건이 성경을 읽는 자의 얼굴에 덮여있다고 말합니다. 수건이 덮여 있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한다는 은유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 수건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갈 때에 벗겨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수건은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기능을 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언약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고 옛 언약인 율법만을 주목하기 때문에 율법의 요구를 다 맞추어야 할 것처럼 기능합니다. 그러나 주님께로 돌아갈 때 이 수건이 벗겨지고, 멍에가 벗겨지는데, 성령은 자유함을 주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나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로 나아가게 되면 나는 참으로 자유하게 됩니다. 정말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서 꽃피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단비로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될 때 그것이 참된 자유가 됩니다. 
 
이 과정은 다 주의 영으로 되는 것이라고 18절은 말합니다. 율법에서 풀려나 복음에 이르게 되는 것, 나를 매어두고 있고 억누르던 그 모든 것들에서 자유케 되어서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누리게 되는 것.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내 죄를 사해주신 감사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더 사모하게 되고, 죄를 사해주셨음이 정말로 내 삶에서 죄를 없애주시는 것임을 알게 되어 내 삶에서 죄가 끊어지는 경험을 하고 가벼워지고 밝아지는 이 모든 과정은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이 우리의 주인이 되실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주목하고 있습니까?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주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들은 우리를 참되게 기쁘게 하지 못하고 자유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썩지 않을 것, 하나님이 주시는 것, 영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의 시선의 주의 말씀을 기뻐하고 나의 입술이 기도와 찬양을 즐거워하며, 나의 발걸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곳으로 향하게 될 때 나는 하나님의 참된 언약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다시 한번 그리스도만을 주목합시다. 다른 것을 바라보아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아프고, 혼란스럽고, 무거웠던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여 우리가 참된 생명을 누리고 더 크게 누리는 매일 매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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