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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새벽설교, 시편 3편

jo_nghyuk 2023. 8. 1. 04:20
시편 3편
1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편 3편의 표제어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의 행복함을 노래하였고, 시편 2편에서는 다윗이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을 노래했는데, 이방 나라들과 열방 민족들이 왕을 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시편 3편에 이르러서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그를 추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대적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시편 1편부터 이어지는 내용의 시퀀스를 생각하면 다소 의아합니다.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했고,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기름부음을 받은 그때부터 대적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오늘 시편에서 등장하는 대적자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 진 친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의 시는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대적자들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원어를 보면 그들이 "나의 영혼에" 말한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적들이 하는 말이 나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적자들이 많은 것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그들의 말이 다윗의 영혼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너를 구해주지 않을거야” “아무 소용 없어”라고 대적자들이 우리의 영혼에 속삭일 때, 그 소리에 끌려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집중하게 됩니다. 
여기서 영적 전쟁의 본질은 문제 자체를 씨름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대적자들이 내 영혼에 속삭이는 것을 이기는 싸움이 더 본질적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게 하느냐. 다른 것을 의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3절부터 고백합니다. 
1,2절은 다윗이 처한 상황에 대한 탄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3절과 4절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찬양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절에서 3절로 넘어갈 때에, 탄식에서 찬양으로 전환될 때에 "셀라"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습니다. 셀라는 음악적 장치로서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음악적으로 고조되기 시작하는 셀라는 시편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원어에서는 그래서 3절의 앞에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상황으로부터 하나님으로 시선을 전환한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의 시작은 상황 속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지만, 3절에서는 “그러나 당신은”이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탄식에서 찬양으로 전환되는 셀라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여기서 나의 머리를 드신다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대적자들에 둘러싸여 실의에 빠져 숙인 나의 머리를 "그러나"의 하나님께서 들어올리십니다. 머리를 들어올리는 것, 내 얼굴을 사람들에게 들 수 있게 하시는 분, 그분을 다윗은 나의 방패이며 나의 영광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에게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장소인 '시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시편 2편에서 시온 산은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언약하시던 산으로 나타닙니다. “네가 내 대적을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고 약속하신 그곳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 장소에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내가 누워자고 깨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기 때문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근심이 없이 잠을 자고 깰 수 있는 것은 나를 대적 앞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비로소 이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 한 분이 나를 붙드시면, 내가 천만인에게 둘러싸여도 나는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7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원수의 뺨을 치시고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라고 이미 완료형으로 다윗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꺾으셨습니다 라고 하는 이 완료형은 이미 주께서 확실히 승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원수의 뺨을 치심은 원수를 부끄럽게 한다는 이스라엘 식 표현이며, 악인의 이를 꺾는다는 것은 악인이 나를 상하게 하고 위협하는 요소인 이빨을 없어지게 하심으로 나를 보호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다윗은 아직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하고 고백 중입니다. 다윗은 여전히 도망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승리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다시 주님의 “복”을 구합니다. 이는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의 복과 다시 연결됩니다.
시편 1편에서 시작된 복 있는 사람은 여전히 고난과 어려움 중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윗의 복입니다. 왜냐하면 천만인 앞에서도 주님께서 원수의 이빨을 꺾으시고 다윗을 편히 잠들게 하시는 경험을 다윗이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서 오히려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 졌습니다. 주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어서, 다윗과 여호와의 관계는 친밀해져만 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강하게 경험하게 합니다. 다윗은 후에 시편 119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고 주의 뜻과 가까워지게 한다는 점에서 나에게 유익이 됩니다.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삶은 고난까지도 내게 유익이 되게 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여 어떤 환경에서도 내게 유익이라, 내게 복이라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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