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22일 새벽설교, 로마서 1:8-17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8월 22일 새벽설교, 로마서 1:8-17

jo_nghyuk 2023. 8. 22. 03:59
8월 22일 화 새벽기도회
찬송 370 통 455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말씀 로마서 1:8-17
  • 주가 주신 선물을 흐르게 하라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늘 로마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로마는 뉴욕과 같은 곳입니다. 로마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생겨났다는 것은 로마가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암스테르담의 선교단체에 있을 때에 그 선교단체의 건물 이름은 문을 의미하는 de poort였습니다. 한 선교사님은 암스테르담이라고 하는 도시가 마치 아메리카의 뉴욕과도 같이 유럽의 허브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에 있는 이 선교단체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고, 또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게 하는 문이 되고, 허브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제자훈련을 받은지 14년이 지난 후에 저는 그곳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온 선교사들과 제자가 되기로 헌신한 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또 전하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또 그들의 은사를 강화하기 위해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는 로마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귀한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13절을 보면,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로마 교회가 열매를 맺을 때, 그 열매는 로마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열매는 각각의 씨를 품고 있습니다. 훈련받은 성도들은 또 다른 도시와 나라에 가서 복음의 씨앗을 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기" 원하며, 교회를 견고하게 하려 한다고 로마에 방문 의사를 밝힙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을 때,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을 "플로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흘려보낸다는 의미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거저 주신 것을 이웃에게 흘려보낸다는 취지에서 그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나만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손을 펴서 흘려보낼 때, 하나님의 힘찬 강물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음을 인정했고, 그 은사를 나누기 원하며, 그것으로 로마 교회가 굳세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은사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이 반드시 강하게 역사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믿음이 로마 교회를 위로하고, 로마 교회의 믿음이 자신을 위로할 것이라고 12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믿음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에, 다른 굳센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성숙하지는 않지만, 각자가 성숙해지기 위해 분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이 믿음의 싸움을 나 혼자 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요. 그러나 바로 그때 다른 누군가가 더 성숙하게 믿음의 싸움을 이기고 있다면, 나는 그의 믿음으로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주 안의 동역자 만큼 우리 영혼에 기쁨이 되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를 나누고, 주님이 주신 물질을 나누는 것은 서로를 굳세게 하고, 서로를 위로합니다. 
흘려보내는 일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흘려보내는 일은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꽃을 피우는 영광에 있지 않고,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데에 정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눔의 근원에는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빚진 자라고 14절에서 말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공회에 잡아 넘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문명인이나 야만인이나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고, 하나님께서 가운데 막힌 담을 헐어 버리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지식도, 명예도, 재물도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높이던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데에 방해가 되고 배설물이 됨을 알았습니다. 가장 귀한 것은 나를 높이기 위해 내 것을 지키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내게 주신 것을 나누고, 낮아지더라도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빚진 자의 의미는 죄책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것이 누군가의 희생 때문이며, 사랑 때문임을 고백하는 것이 빚진 자의 고백입니다. 주님께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 받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은혜를 흘려보냅니다. 그 은혜는 주께 빚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은 모두 빚진 자입니다.
주께 은혜 받은 우리는 모두 빚진 자입니다. 
복음을 주께서 거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를 빚진 자로 만듭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빚을 졌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은혜의 복음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합니다. 
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16절에서 담대히 선포합니다. 바울이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다. 믿음을 강화할 수 있다. 고 믿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능력의 복음입니다. 고백하는 이에게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우리가 의롭지 않을 때, 주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 우리의 불의를 극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을 때, 주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의 불순종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는 17절의 하나님의 의는, 내가 애써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입니다. 이 의는 하나님께 철저히 나를 맡기고 항복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나를 드리는 삶은 내 힘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주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항복의 삶이며, 산 제사의 삶입니다. 
동시에 그 항복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주께서 시작하시고, 주께서 마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선물이고, 자유이며, 기쁨이고, 구원의 즐거움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염려하거나 한탄하거나 낙심치 않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에게 딴 근심 있으랴 고백하는 찬송가처럼, 예수님 안에 우리의 모든 짐은 풀어지고,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이 받은 은사는 바울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선물이며, 주님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주가 주신 선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흘려보내며,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능력 있게 살아갑니다.
능력은 흘려보내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 안에 있는 은사의 비밀입니다.
은사는 사용할 수록 강화되고, 줄 수록 커집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은사를 흘려보냄으로, 주님 안에 풍성해지는 복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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