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미친 여정의 복기 3, 홋카이도 8월 31일 본문
숙소에서 머핀과 커피를 아침으로 하고 우버를 타고 도쿄 역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부로 도카이선이 운휴하였고 도호쿠선까지 운휴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신칸센 승강장으로 향했다. 미래는 의뭉스럽다. 시게키 상은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고 말했다. 다행히 기차는 하코다테까지 열심히 달렸다. 후쿠시마와 센다이 지역을 지나고 모리오카와 아오모리를 지나 하코다테에 다다르자 개찰구 앞에 시게키상이 있었다. 우리는 성게가 포함된 스시를 먹고 모토마치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츠타야 서점에 가서 나는 만화책과 음반을 샀다. 옆에서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시게키상이 아버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었다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 살아가면서 배역이 스위칭될 때가 있다. 아들이었던 사람이 아버지가 되고, 학생이었던 사람이 선생이 되고, 후손이었던 사람이 선조가 되어간다. 그리고 좋은 특질들을 배운대로 전달해주면서 세대교체의 접합부가 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시게키상은 언제든 지치고 힘들면 찾아오라고 말해주었다. 아버지를 여읜 후로 좋은 목사님을 만나면 아버지처럼 느껴진다.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에 들어와 잠에 들었다.
다음날은 비가 거세게 내렸다. 가정식 조식을 먹고 세븐일레븐에서 커피와 음료를 사서 호쿠토 특급열차에 올랐다. 기차는 산 한가운데로 난 숲길을 달렸다. 숲길을 지나고 해안가를 달려 기차는 삿포로에 당도했다. 나의 여정의 반은 기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기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한참을 달려온 나는 삿포로 시내에서 시오라멘을 한그릇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공항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되어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제주공항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관서에서 관동으로, 관동에서 북해도로, 신치토세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태풍과 함께 한 일주일이었다. 어떤 것은 계획대로 되었고, 많은 부분은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다르게 흘러갔다. 일전에 네덜란드에서 한참을 자전거를 타고 평야를 달렸던 것이 나의 향후 십년간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태풍을 뒤로 하고 기차를 타고 타임어택을 하는 이 경험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앞으로의 십년의 중요한 상징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짧고 덧없는 시간을 이곳에 기록함으로 나는 그 시간을 붙잡아두고자 한다. 지나간 것은 사라지지만 흔적을 남겨준다. 흔적을 재구성하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제정신을 가지고 미칠듯한 여행루트를 재구성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진 것 뿐 아니라 상실한 것 또한 내 삶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있었던 것'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현재의 기록 안에서 가지는 것이다. 흔적의 재구성을 그래서 리쾨르는 부활의 은유로 설명한다. 그냥 지나쳤을 뿐인 기차역들이 재구성을 통해서는 내가 통과해갔었던 삶의 의미들이 되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