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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새끼에 대해

jo_nghyuk 2009. 5. 22. 01:39

 

당나귀에 대한 설명

 

 

당나귀는 동물분류학상 말·얼룩말과 함께 말속()을 형성하고 있다.

 

당나귀의 기원은 가축화된 것과 야생의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야생의 것에는 아프리카 야생당나귀와 아시아 야생당나귀가 있다. 아프리카 야생당나귀는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남부지방에 걸쳐 살고 있다. 몸의 크기는 큰 개 정도이며 좀더 큰 것도 있다. 힘은 세지만 성질은 소심하다. 아시아 야생당나귀는 시리아 ·아라비아·이란·티베트·몽골 등지에 살고 있다. 몸의 크기는 대체로 말과 당나귀의 중간 정도이다. 다윈은 아프리카 야생의 누비아당나귀(E.a.africanus)를 오늘날 당나귀의 선조로 취급하였는데, 켈러는 아시아 야생당나귀를 당나귀의 원종으로 취급하고 있다.

 

현재는 아프리카 야생당나귀가 가축화된 것이라는 게 정설화되어 있다. 가축화는 유목 유랑민족인 셈족이나, 또는 이들과 관계가 깊은 종족에 의하여 BC 4000년경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아시아에서 물자 운반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인도·페르시아·아라비아 지방에서도 이것을 가축화했고, 아시아 야생당나귀는 소아시아를 경유하여 그리스·이집트로 옮겨 지중해 연안까지 분포되었다고 한다.

 

최초에는 운반용으로 많이 이용되었으나 승용·유용(乳用), 일부는 육용(肉用)으로도 이용하게 되었다. 또 오나거(onager) 계통의 것과 소말리당나귀(F.a.somalicus)를 교배시킴으로써 속력이 빨라져서 사람들이 승용에도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나귀가 중부 유럽에 수입된 것은 그로부터 상당히 오랜 후의 일이며, 주로 로마사람에 의하여 널리 분포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 와서 당나귀 개량에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나는 꿈 속에서 이빨이 다 빠진 노새를 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한 주인이 그를 부여잡고 애처롭게 통곡하는 것을 3인칭 시점으로 보고 있었다. 꿈에서 깨고 오래지 않아 나는 그 노새가 당시 지친 나였으며 주인은 나의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였다고 나와있다. 왜 하필 당나귀였을까? 나는 김준기 목사님의 블로그 (단순한 검색으로, 개인적 친분은 없다.)에서 그가 쓴 시에 공감했다.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당나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던 날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셨다.

숱한 짐승 많은데

하필이면 어린 나귀였을까
?

어미 떼어 놓을 만큼

자리지도 못한 연약한 모습


사람 태워본 적 없어
길들지 않는 천둥벌거숭이

제 뜻 통하지 않으면
어깃장 놓는 고집 센 짐승


길 가에서 외치는 군중들 환호에
제 잘난 줄 착각하는 어리석음


,
그것은

예수님을 태우고 가면서도
예수님을 잊고 사는

철딱서니 없는 내 모습이다.

 

 

당나귀 새끼에게는 가벼운 짐뿐이 실을 수가 없다. 약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당나귀 새끼에 탔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리고 여러 성경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해) 예수는 왜소한 체구였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나는 예수의 멍에는 가볍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 멍에는 쉽고 가벼우니라고 그 분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의 멍에를 함께 메지만 사실 모든 일은 예수로부터 시작되어 예수에게서 종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길 가에서 외치는 군중들 환호에
제 잘난 줄 착각하는 어리석음

바로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가 예수를 업어드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바로 성에 들어갈 수 있는 패스워드password 내지는 패스포트passport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없이는 성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가 승리자이기에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나귀는 자꾸 거꾸로 생각한다. 당나귀 새끼는 철딱서니 없으므로 더 왜곡하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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