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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성령을 따라 행한다"라는 것이 단순하게 그때그때 즉흥적인 흐름에 맡긴다는 뜻이 된다면 이 또한 반쪽짜리 진리가 된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면서 그 다음 스텝을 어느 방향으로 내딛어야 하는지에 대해 주도면밀해야 함을, 오히려 그 근신과 절제에 대해서 민감한 계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 원한다면 나의 정욕과 탐심은 십자가에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 안에서 우리는 교모하게 획책을 꾀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의 선상에서 이루어지며,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로 시작하였다가 자꾸만 스스로의 의로 변질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자꾸만 못을 빼고 내려오는 것은 이러한 ..
참된 충성에는 경직이 없다. 이 충성의 근원은 자유이다. 성령은 나를 자유롭게 하셨다. 이 자유에서 충성할 수 있는 자유로 신자는 나아간다. 이 충성은 내부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외부에서 강요하는 충성은 억압이고 폭력이다. 그러나 이 충성은 내부에서부터 나를 도우시는 성령의 열매이다. 이 충성은 전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공의를 연약한 죄인이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내부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의지를 임재를 통해 움직여가신다. 이때의 움직임은 여전히 강요가 아니라 요청이며 먼 곳으로부터의 손짓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맞잡은 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걸음씩 우리가 속해있던 미궁을 빠져나온다. 우리는 광야를 벗어나는 중이다.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광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