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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내가 어떤 선함을 행하고 난 뒤에 전에라면 외롭다고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왜냐면 내 의지로 내 자아를 죽이려 했으니까. 모든 사람은 위로를 필요로 하고 용납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러하다. 그러나 입만 벌리고 있어서는 누군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내 쪽에서 찾아가고 위로하고 안아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쯤에서 자아의 질문이 시작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자신의 의지로 이 선하고 의로운 일을 행했다면: 나는 누가 위로할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나를 위로할 것인가? 내가 사람들의 연약을 품을 때, 나는 강해야 하는 것인가? 나의 이 연약은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굴 속으로 들어가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나여, 자신의 의지로 자아를 죽이며 이러한 일을 ..
참된 충성에는 경직이 없다. 이 충성의 근원은 자유이다. 성령은 나를 자유롭게 하셨다. 이 자유에서 충성할 수 있는 자유로 신자는 나아간다. 이 충성은 내부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외부에서 강요하는 충성은 억압이고 폭력이다. 그러나 이 충성은 내부에서부터 나를 도우시는 성령의 열매이다. 이 충성은 전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공의를 연약한 죄인이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내부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의지를 임재를 통해 움직여가신다. 이때의 움직임은 여전히 강요가 아니라 요청이며 먼 곳으로부터의 손짓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맞잡은 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걸음씩 우리가 속해있던 미궁을 빠져나온다. 우리는 광야를 벗어나는 중이다.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광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