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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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의 숨, 자전거의 바람

jo_nghyuk 2012. 10. 3. 18:39


요새 독서량이 조금씩 늘어감에 따라 체력에 대한 중요성을 점점 실감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일이 끝난 아내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8시가 되면, 함께 학교로 돌아와 아내는 음악관의 오르간 연습실로 들어가고 나는 도서관으로 돌아가 책을 읽는다. 그러나 이 시간부터 독서량에 비해 습득량은 10%가 채 되지가 않는 것이다. 책상에는 앉아 있으나 다리는 땅 밖으로 돌출된 구근처럼 꼬일대로 꼬이는 것이다. 그야말로 책에 의식을 뿌리내리지 못하였소, 라고 종아리가 외치는 격이다. 뿐만인가, 급기야는 나비처럼 펄럭펄럭 양다리가 날개짓을 하는데 그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의자 위를 이륙할 기세다. 실상은 책 속에 조금이라도 침투하려는 수면 속 접영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갖은 노력을 두시간 여 한 뒤에 파김치가 되서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체력에 대한 중대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체형과 관계 없이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를 본 일이 있다. 
해서 시간이 날 때면 나는 언제든지 자전거를 끌고 강변으로 나가는 것이다.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지식은 늘어가겠으나, 무언가 결여된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먹기는 조금 부족하게 하고 움직이기는 조금 더 부지런하게 하는 것이 건강하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바로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보다는, 아이폰 사파리 웹브라우저에 있는 읽기 도구 안에 읽을 거리 링크를 걸어주고 자전거를 몰고 일단 나가는 것이 체력에나, 지성에나,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더욱 건강한 것 같다. 자전거를 삼십 여분 타다가 몇 키로 앞에 있는 다리 밑에 멈춰 세워두고, 그늘 아래 벤치에서 강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읽기 도구에 링크해둔 글들을 읽는 것이다. 작은 가방이 있다면 문고본 책을 넣거나, 수첩을 넣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내 주목적은 한두시간의 운동이므로 보통은 청바지에 아이폰과 이어폰 말고는 넣지 않는다. 

사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출발할 때의 기분과 달리 그다지 음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행 중에 보는 풍경과 바람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달릴 때 저 멀리서 횡으로 가로지르는 다리 위의 기차를 보고 그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집은 월계역인데, 월계에서 녹천으로 가는 기차길은 중랑천을 따라 늘어져 있다. 그 기차 안에 있어서 덜컹거리는 철의 감각을 느끼는 것도 좋고, 강 건너에서 함께 달리며 으르렁거리는 철의 소음을 듣는 것도 참 좋은 기분이다. 

가끔 자전거를 타며 다리를 지나칠 때면 색소폰이나 트럼펫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교각 아래 굴곡진 곳마다 나팔 소리가 부딪혀 반향을 이룬다. 사실 그것은 증폭된 연주자의 숨일텐데, 숨이 커다란 소리가 되어서 일종의 바람과 같이 다리 밑에 충일한 기분이 그때마다 드는 것이었다. 
예전 교토에 죽마고우와 함께 갔던 일이 있었는데 가모가와 하류의 건너편에서 우리는 중절모를 쓴 젊은 트럼페터를 만난 일이 있다. 말쑥하게 모던한 재킷과 캐쥬얼을 입은 그는, 우리가 그에게 가기 위해 강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를 반쯤 건너기도 전에 황급히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었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그의 숨도, 증폭된 소리도, 바람도 강 건너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흔적이 없이 깔끔한 진공. 바람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아니, 자취라고 하면 태풍이 지나간 뒤의 하늘과 같은 뚜렷한 청명함이라고 오히려 말해야 한다. 트럼페터의 연주가 끝나면 사람들은 이 뚜렷한 진공감 가운데 놓여지게 된다. 클래식 콘서트홀이라면 뒤늦은 박수가, 재즈라면 당김음과 같은 박수가 그 진공을 다시 채우게 된다. 

바람 얘기를 했으니, 뚜렷한 진공 이야기가 남을 것이다. 그 말은, 자전거를 적절하게, 그리고 만족스러울 정도로 타고 난 뒤에는 의식에 청명한 공활함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에 빈 진공이 생기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오히려 개방에 가깝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태풍 후에 더 높게, 그리고 더 멀게 시야가 개방되듯이, 내 의식도 더 뚜렷해지고 공활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전거는 내게 부는 바람을 증폭시키는 트럼펫과 같은 인스트루먼트instrument가 되어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펫은 바람을 불지만,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움직임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바람을 만나게 하는 "내던져짐"의 행위이다. 전적으로 밖에서부터 부는 절대성의 바람이 있고, 스스로를 안에서 밖으로 내던질 때만이 만날 수 있는 상대성의 바람이 있다. 

그래서 쓰고 싶은 것은, 운동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다.라는 단순한 문장입니다. 알았다면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한 후에는 그 청명함으로 더 잘 아는 것이고,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 운동에는 이차적 의미들을 부여할 수도 있을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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