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가라아게와 허쉬 브라운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가라아게와 허쉬 브라운

jo_nghyuk 2012. 10. 8. 16:32
심야식당 시즌 2를 보면 "가라아게" 편이 있다. 가라아게는 일본 가정식 닭튀김 요리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사카이 마사토 주연의 "남극의 쉐프" 초반부에서도 이 가라아게가 등장한다. 주인공이 남극의 월동대의 요리사로 가기 전에 부인이 만들어준 가라아게에 대해 두 번 튀기지 않으면, 그것도 정확한 온도로, 튀김이 바삭하지 못하고 안의 살코기도 제대로 익지 않아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잔소리를 하다가 핀잔을 듣는 대목이 있다. 실제로 가라아게는, 겉의 튀김은 바삭하고 안의 살코기는 촉촉한 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메뉴판에 소위 "가라아게"라고 적힌 것들을 몇번인가 먹어본 일이 있는데, 그야말로 "촉촉함이 없는 치킨"이 아니면 너무 축축해서 "덜 튀겨진 살덩이"의 양극성 장애를 달리는 듯한 맛 뿐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싼 것은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무언가 이런 식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나를 다소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적어도 원천적으로 "이거다!"라는 맛을 한번 보고 나면, 다른 비본질적인 맛은 받아들이기 힘든 법이다. 

어쨋든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심야식당의 가라아게 편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이 단편에 등장하는 젊은 처녀는, 항상 식당에 들어와 가라아게를 주문하고는 평안한 표정으로 잠에 들어버리는 묘한 패턴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가라아게 자체는 그 여성에게 있어서 상징물에 가깝다. 먹느냐 먹지 않느냐 가 문제가 아니라 "가라아게"라는 것을 주문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전적으로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느냐 가 이 여성에게는 중요한 이슈였던 것이다. 
그녀는 항상 같은 꿈을 꾼다. 친오빠가 나와서 가라에게를 다 빼앗아먹는 꿈이다. 그래서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심야식당에 오면 가라아게를 시키고는 잠이 들어버리나보다. 
그런데 내게는 이러한 행위 자체가 제의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까지 보인다. 여성은 오빠에게서 빼앗긴 가라아게를 선취하기 위해 현실에서 가라아게를 주문하지만, 먹지 못하고 바로 잠이 든다. 그것도 매우 평안하게. 
그리고 꿈에서 또다시 오빠에게 가라아게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계속해서 식당에 와서 가라아게를 주문하곤 잠이 드는 것이다. 가라아게는 여성과 오빠를 만나게 하는 매개물이다. 예상대로 드라마는 오라버니와의 재회의 내용으로 플롯을 이끌고 간다. 오빠와의 화해 뒤에, 여성은 더이상 식당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그저 가라아게를 맛있게 먹는다. 식당의 손님들은 더이상 잠이든 청순한 얼굴을 감상할 수 없음에 아쉬워 할 따름이지만. 

이 드라마를 본 뒤에 나는 교토에 갈 일이 생겼었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무의식은 무섭다. 나는 가라아게를 파는 식당을 열심히 눈을 씻고 찾아다녔다. 웃긴 건 찾으면 없다는 거. 나는 낙심한 마음으로 마지막 날 밤을 맞았다. 숙소 옆의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저기, 가라아게는 없나요?" 라고 인상 좋은 주인 아저씨께 물었다. 아저씨는 가라아게는 없고 매일의 메뉴가 있는데 오늘은 데리야끼 치킨 정식이라고 했다. 역시 심야식당처럼 주문하는대로 다 될리가 없지, 생각하며 데리야끼 치킨을 시켰다. 식당 벽을 가득 채운 만화책을 꺼내 보면서. 일본어라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먹을 수 없는 가라아게처럼 서글펐다. 나는 배부르게 늦은 저녁을 해치우고 식당 앞의 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자판기 음료를 뽑아 마셨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데, 가라아게, 가라아게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중독과 은혜"라는 책을 보면 무의식적 욕구는 성취되기 전까지는 "소진적 행위"로도 만족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은혜로 초탈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라아게, 무섭다. 



다음날 나는 오사카 도톰보리에 갔다. 가라아게를 미친 듯이 찾았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가타가나로 가라아게라고 쓰여진 간판을 자세히 보면 "가라오케"인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나는 가라아게를 포기하고 오꼬노미야끼와 우롱차를 점심으로 먹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간사이 공항에서 나는 주머니에 천 엔 가량 아직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저녁 메뉴를 보는데 라멘, 돈까스, 우동 등이 있었고, 세트 메뉴가 있었다. 그런데 비싼 라멘 세트에만 가라아게가 곁들여 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라멘 세트를 시켰다. 가라오케, 아니 가라아게를 위해.

그리고 "확실히" 잘 튀겨진 가라아게를 공기밥 위에 올려 놓고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가라아게동이야. 이건 가라아게 세트야. 난 가라아게를 시킨거야. 확실히 그날 저녁은 너무 배불렀던 감이 있다.



그 뒤로 한국에 돌아와 기회가 될 때마다 수없이 가라아게동과 가라아게 사이드 메뉴를 주문했다. 처음 진술했던 것처럼 만족스러웠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건 절대로 내 입맛이 까탈스러워서가 아니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왜냐면, 학교 앞에서 먹었던 4500원짜리 도시락에 곁들여 있던 가라아게 세 덩이가 한국에서의 그 어떤 "닭튀김"보다도 일본의 그것과 맛이 비슷해서 놀라버렸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오랜 벗은, 내 미각이 예민하다고 15년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나저나 거기도 가라아게는 햄버그와 등등 세트로서만 함께 곁들여 나오고 있었다. 

가라아게, 너는 왜 나에게 그다지도 큰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냐. 게다가 "주력" 품목이 아닐 때에 더 맛있는 이 모순은 또 뭐냔 말이다. 따로 팔지도 않으면서. 

맥머핀보다 허쉬 브라운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음, 내 기분을 잘 알지도 모른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