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승리자의 자녀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승리자의 자녀

jo_nghyuk 2013. 3. 19. 19:12
아이를 막 대하면 그는 거칠어진다. 그리고 모든 감각이 러프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를 조심스럽게 대하면 그의 모든 감각은 섬세해진다. 
하나님은 자녀를 막 대하지 않는다. 쓸 것과 채울 것을 막 던져주는 분이 아니다. 그는 절대 그의 자녀를 방기한 적이 없다. 그는 모든 단호함 가운데로 그의 자녀를 부드럽게 이끌어가신다. 가장 나쁜 자녀교육은 그를 애매모호한 미래 가운데로 단호하게 이끄는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고 인도는 부드럽고 가르침은 단호해야 한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과 언어 발화에서 구강의 후음을 미묘하게 분별해간다는 것, 문체에 있어서 온갖 부드러운 시적이고 단단한 산문적인 것을 소화해간다는 것, 수많은 도구 사용법을 익혀간다는 것, 방종의 먼지를 털고 단정한 자유로 나아간다는 것, 교만의 뿔을 꺾고 나태의 털을 깎고 "사람답게" 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그를 더 닮아가는 여로이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도덕적인 성화를 포함하여 우리는 보다 더 단호함 가운데로 부드러운 인도를 받으며 한걸음씩 걸어간다. 유아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모든 두려움을 인식하면서 점차 그것을 떨쳐내는 것이다. 자신 안의 짐승에게 계속해서 진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유아이며 율법의 자녀라는 것이다. 유아는 옛사람이며 과거로의 재귀이며 자기반복이며 퇴화이다. 그곳에선 어떤 승리도 기대할 수 없다. 성령이 오신 이후로 우리는 자유케 되었으며 유아에서 벗어나 청년이 되어간다. 짐승보다 "더 강한 자"가 내 안에 들어오셨다. 

좀 더 항복하라, 좀 더 내어드리라, 두려움까지도. 왜냐면 그는 절대로 너를 막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는 협곡을 지난다는 것이 단순히 위험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네 안팎으로 어슬렁거리는 짐승을 이기기 위한 자유의 필연적인 여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고난과 분투와 열심은 미래의 영광과 자유와 평화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건강한 미래를 소망할 수 있다. 하나님에 의해 선취된 승리는 또한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승리자를 닮아가는 자녀이다. 


육체의 연습, 경건의 연습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