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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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730일에 대한 해석학

jo_nghyuk 2019. 2. 20. 00:58

2년간의 고전어 생활이 내일부로 끝이 난다. 기초 문법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패러다임을 복습하는데 연습장에 서걱서걱 구부러진 옛 글자를 적는 기분이 슴슴하다. 통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는데 언젠가부터 통과가 목적이 된 공부를 했던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보았다. 과정이 아니라 목적만을 효율적으로 겨누는 삶은 지루할 정도로 약삭빠르다.

네, 아무튼 통과가 목적인 공부가 아니라 공부가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었으면 한다. 최근에는 파스타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았는데 커피를 배울 때처럼 재밌다. 늘 성급하게 시작했다가 원리라는 것을 배우면서 차근차근, 넉넉하게 하는 것을 배우면서 실력이 성장한다. 

저마다 걷는 길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빨리 달리는 것이 기쁨이고,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찬찬히, 하는 것이 기쁨일 것이다. 지난 2년간은 고전어를 하면서 독일어의 심층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라틴어를 하면서 프랑스어에 접근하는 기쁨을 누렸다면, 이번에는 그리스어를 통해서 성서에 접근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삶에 즐거움이 있는 것만은 아니지요. 솔로몬의 말처럼 슬픈 시간이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고, 잔치집보다 상갓집이 사람에게 생각이란 걸 하게 하는 법이다. 가장 힘든 시간은 '자신의 맨 얼굴'을 보는 시간인데, 그야말로 "나의 타자성"을 용납하지 않고서는 이 맨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의 맨 얼굴의 공허를 마주해야 다른 이들이 맨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 눈물을 흘릴 때 어루만져주는 마음의 넉넉함이 생기지 않을런지. 

스스로를 다그치며 사는 것도 방법이요 스스로를 위안하며 사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한 일본인 철학자가 그리워하던 장화신은 레비나스같은 철학자가 되고 싶다. 비오는 날 초인종을 누르면 장화를 신고 빗자루를 들고 나와주는 그런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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