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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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4월 9일 저녁기도회 복기

jo_nghyuk 2019. 4. 10. 02:48

글로는 담을수 없는 임재, 임재, 임재...

Kim walker나 Misty Edwards 등 여성 찬양사역자들을 보면서 부러웠던 것은, 어떻게 하면 저렇게 뜨거운 임재 안에 늘 거할까였다. 그런데 그 질문 자체가 어리석었음을 나는 깨닫는다. 하나님만으로 채워지려 하는 갈망으로 계속해서 정련하시는 거룩한 불 앞에 나아가면, 그 임재의 뜨거움과 무거움을 이 그릇이 담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잔잔한 바람처럼 고요하게 역사하실 때도 있지만, 폭풍과 불과 지진처럼 역사하실 때가 있다. 마치 연인의 사랑과 같다.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해 엄청나게 질투해온 하나님의 델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조금이나마 체험했다. 내가 하나님께 가는 길은 윤리의 길도 아니요, 도덕의 길도 아니요, 선과 악의 분별의 길도 아니요, 오직 기도와 간구로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Paul Washer가 설교하였듯, '나는 간절히 성령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날도 오시지 않았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달도, 그 다음해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몇해가 지나고... 성령이 오셨습니다. 나는 예수님만으로 충분하게 참고 넘치는 임재를 느꼈습니다.'와 같은 간절함을 주는 원하신다. 왜? 그는 우리를 질투하시고, 연인처럼 갈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인의 사랑과 같다고밖에 표현할수가 없다. 하나님과 나 둘 다 뜨거워야 한다. 연인은 둘 다 뜨거워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뜨겁게 갈망해야 한다. 미쳐버릴 정도로 그 얼굴을 그리워해야 한다. 놀랍게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되어 있다. 

나는 오늘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와 그분의 사랑은 이제 뜨겁게 정련되는 정금처럼 나와 너의 구분없이 녹아내릴 것이다. 1분도, 1초도 그분을 사랑하는 데에 쓰고 싶다. 한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아아, 이제 내 삶은 어떻게 될까...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임재연습을 읽고 큰 깨우침이 되었다. 설거지를 할때조차도 나는 주님을 원하고, 길을 걸을 때에도 주님을 원합니다. 찬양으로 내 삶이 가득차기 원합니다. 당신으로만 가득찰 때 나는 모든 원수를 이깁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당신의 말씀이 나에게 현실이 됩니다. 내가 내 안의 파우스트같은 교묘함을 비틀어 죽여버리고 났을때, 당신은 나에게 담대함으로 채워주십니다. 저는 꿈에서 본 그 원수를 이미 이겼습니다! 또 한단계 넘어서게 하십니다.

어릴적에 전도사였던 아버지의 상 위에 올라가 짧은 팔을 들어올리며 멋모르고 '할렐루야'를 외칠 때부터 당신은 이미 나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당신을 향한 엄청난 사랑으로... 주님 저는 당신의 사랑으로 다 타버릴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분명하게 분별이 됩니다. 

어서 오라. 함께 가자. 너와 내가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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