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5일 저녁설교, 누가복음 5:1-16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8월 5일 저녁설교, 누가복음 5:1-16

jo_nghyuk 2021. 8. 9. 16:54

8월 5일 목요일 저녁예배

찬송 254장 통 186

  • 내 주의 보혈은

말씀 누가복음 5:1-16

  • 부정한 자를 정케 하는 거룩함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무리들이 거기까지 몰려와 예수님은 빈 배를 설교강단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그 배는 밤새 물고기를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무리가 많아 무리를 피해, 혹은 음향 효과를 위해 베드로의 배를 이용해 설교를 하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5절에서 예수님은 시몬에게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먼저, 고기 잡는 데 좋은 시간대가 아닙니다. 그리고 깊은 곳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명령하시는 이는 어부가 아니라 목수의 아들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몬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지쳐있습니다. 베드로가 만약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거나, 예수의 배경을 보거나, 자신의 피곤함에 집중한다면 순종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봅니다. 그런데 6,7절을 보니 고기가 심히 많아 배가 잠길 지경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분량은 이렇게 넘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복의 크기를 보십시오.

 

8절은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구절입니다. 8절은 시몬을 "시몬 베드로"로 표기하고 있다. 이전까지 시몬이라고 부르다가 8절부터 시몬과 베드로라는 이름이 교차합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그 말은 시몬에게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음을, 영적인 무언가를 감지하게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베드로는 5절에서와 달리 예수님을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주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앞에 엎드립니다. 이 엎드림은 종이나 노예가 주인에게 보이는 복종의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자신을 "종"이라 표현하지 않고 "죄인"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보았는데, 오히려 주님에게 저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단순히 물고기 기적을 넘어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빛 안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엄청난 죄인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서 "저를 멀리 하세요.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멀리하지도, 떠나시지도, 거부하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말라"  베드로의 존재를 예수님이 거부하지 않고 베드로의 두려움을 없애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 안에서 설교를 하신 의도가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을 "취한다"는 말은 위험에서 생명을 건진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 이야기에 이어지는 12절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부정하게 여기던 문둥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엎드립니다. 문둥병자는 부정한 존재이므로 늘 "나는 부정하다!"를 외쳐야 했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문둥병자를 피했습니다. 그런 문둥병자가 주님 앞에 엎드릴 때에 주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시며 손을 그에게 대십니다. 예수의 긍휼은 사람들의 전통과 통념을 넘어서서 사람을 만집니다. 

죄로 부정한 베드로도, 나병으로 접촉이 금지된 문둥병자도 예수님은 만져주십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이들을 멀리하였을 것입니다. 제사장일지라도 이들을 멀리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긍휼은 모든 막힌 벽을 허물고 소외된 이들에게까지, 부정하다 여겨지는 이들에게까지 미칩니다. 

사람들의 편견과 딱딱한 전통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의 근원은 어디서 나올까요?

 

이 사역 이후에 예수님은 또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사 기도하십니다. 헬라어로는 미완료 형태로 쓰이는데 헬라어에서의 미완료형은 반복되는 행위를 나타낼 때 쓰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또다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어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어갈 때 성령의 능력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거룩의 능력은 단순히 사람에게서 구별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구별은 죄와 의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거룩의 적극적인 개념은 사람을 또한 거룩하게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거룩함은 율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였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예수님은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거룩함을 회복시키는 소명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바라건대 저와 여러분 모두 이 거룩한 소명을 회복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 돌아오게 하고 거룩함으로 회복시키는 예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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