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18일 설교, 고린도전서 10장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8월 18일 설교, 고린도전서 10장

jo_nghyuk 2022. 8. 18. 17:42
8월 18일 목 새벽기도회
찬송 347 통 382
  • 허락하신 새 땅에
말씀: 고린도전서 10 
  • 거치는 돌이 아니라 구원의 반석으로
 
출애굽 사건 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면서 다 함께 그 바다를 지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지난 것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목숨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말합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있었고 이스라엘은 바다에 빠지거나 군대에 죽임을 당하거나 할 형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홍해 사건은 세례로 묘사됩니다. 갈라진 바다 사이를 지나는 것은 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물로부터 건져주신 권능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 함께 세례를 받았고, 다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반석에서 나오는 물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바울은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반석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생수가 나오는 것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렇게 반석과 그리스도를 연결시키고, 홍해의 갈라짐과 그 사이로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례받은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지금의 그리스도인들과의 유사성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축복의 유사성도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그 유사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5절이 말하듯이, 그들의 다수가 광야에서 불순종으로 인해 멸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을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그 당시의 이스라엘인들 사이의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결과를 통해 하나님은 후대 사람들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본보기를 삼으셨습니다. 그 불순종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주셨습니다. 
7 그들 가운데에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과 같이 우리는 음행하는 자가 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에 어떤 사람들과 같이 우리는 주를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원망하는 자가 되지 말자
이 죄악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멸망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시험함, 원망함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세례를 받고 하나의 말씀을 받고 주의 공동체가 되었지만 모두가 광야에서 생존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본보기를 삼으신 것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라는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우리도 죄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면 이렇게 멸망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경각심을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고 희망이 되십니다. 그 말은 우리가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13절에서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주시되,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으면, 시험을 당하려 하면 그때 피할 길을 내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증언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에만 너무 집중하면, 나도 죄인인데 나도 멸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보기로서 ‘조심하라’고 주신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주의 구원 안에 들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시험 당할 때에 그것을 이길 힘도 주시고, 그것을 피할 길도 내주셔서 우리가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우리 옆에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바울은 특별히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분명 이전 장까지는 우상숭배가 아무 것도 아니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동일한 사건에 대해 우상숭배적인 측면을 집중해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고기를 먹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고기가 신전에 바쳐질 때에 그 제사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긴밀한 관련이 있었으므로, 그 제사의 현장에서 힘있는 자들과 관계를 맺고, 영향력이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그 제사에 그러한 목적으로 참여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이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합니다. 우리의 떡과 우리의 잔은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냐, 라는 이 말은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의 제의가 이와 유사한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포도주와 음식등을 가지고 거기에 신이 육체적, 물질적으로 역사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먹었던 것이 당시 종교입니다. 바울은 그 제사에 참여해서 포도주와 떡을 떼는 사람들에게 묻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마시는 포도주와 떡은 그리스도의 피와 그리스도의 살이 아니더냐? 왜 이방 신들의 피와 이방신들의 살을 먹는 그 제사에 참여하고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즉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 라고 바울은 2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것이므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3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자유를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일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가 자유를 가졌다고 해서 내 공동체의 다른 이들이 실족하는 일을 벌일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명합니다. 
바울은 그래서 절대로 이방 제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과 함께, 거기에 바쳐졌던 고기가 시장에 나온 뒤로부터는, 이웃과 함께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먹으라고 지침을 줍니다. 왜냐하면 땅과 거기 충만한 것, 그 고기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며 우상에게 바쳐진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할 때 내 자유는 온전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가 다른 이에게 거치는 돌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거치는 돌이 아니라, 든든히 이웃이 설 수 있는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내 자유를 구가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자유를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때로는 사용하고, 때로는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심하는 길입니다.  나의 자유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귀한 통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문화의 현장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나의 자유를 쓸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자유는 자녀됨의 권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도피하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에서 거룩함으로 그리고 권세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자유에 대해 훈련되어야 하고 정련되어야 합니다. 내게 주신 것을 나를 위해 쓰지 않게 하소서. 주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쓰게 하소서. 나의 자유를 훈련시키소서,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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