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19일 설교, 고린도전서 11장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8월 19일 설교, 고린도전서 11장

jo_nghyuk 2022. 8. 18. 17:42
8월 19일 금 새벽기도회
찬송: 620
  • 여기에 모인 우리
말씀: 고린도전서 11장
  • 기다림으로 하나되는 주의 몸
 
오늘 우리가 보게 될 11장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교회에서의 행실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현대 교회에서 시행하는 성만찬의 원형이 되는 주의 만찬이라고 하는 식사에서의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3절을 보면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머리라고 하는 말은 근원이라는 뜻을 또한 상징합니다. 이는 아담의 뼈를 통해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났듯이 여성은 남성에게서 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은 11절에서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12절을 보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다는 사실을 또한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는 남성을 먼저 지으셨으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출생할 때에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이 질서는 우월함의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향해 가는 길의 질서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머리 수건을 써서 자신의 머리가 남자임을, 남자들은 머리를 가리거나 기르지 않아서 자신의 머리가 그리스도임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질서를 나타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이 동시에 강조했던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질서대로, 순리대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전통에서는 남자가 머리를 기르지 않았고, 반대로 여성은 머리를 짧게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행한다면 이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남자가 머리를 기르면 여성이 되는 것과 같이 여겼고, 여자가 머리를 짧게 하거나 긴 머리를 흐트러뜨리면 매춘부와 같이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질서가 혼란스럽게 되지 않기 위해 남자로서, 여자로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이슈는 주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초대 교회의 전통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갈등과 분열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분리도 있었습니다. 이 주의 만찬이라 불리우는 것은 지금 우리가 포도주와 떡을 떼는 정도가 아니라 만찬의 형식을 가진 공동체의 식사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이 식사 자리에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는 자신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고백하고 선포하였습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는 이 행위가 그들의 하나됨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야기를 통해 추론한 것은 21절에서 보듯이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고 만찬이 끝난 뒤에 어떤 이는 먹지 못해 배고프고 어떤 이는 술이 취할 정도로 먹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만찬을 각각 그룹을 지어서 먹은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그룹을 지은 이유는 바로 부요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먹는 음식을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부요한 자들이 모인 그룹에서의 주의 만찬은 아주 풍성했으며, 그렇지 못한 자들의 모임에서의 만찬은 아주 빈약했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행위라고 책망합니다. 
주의 만찬은 주의 피와 주의 살을 말 그대로 나누는 성만찬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 모여서 기리는 것은 주의 죽으심을 기리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피와 살을 나눔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시고 살을 찢기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주의 만찬에서 소외될 수 없음을 선포하는, 설교와도 같은 중요한 복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각기 나뉘어져서 주의 만찬을 하고 있다는 것은, 27절이 말하듯 주의 몸과 피를 범하고 있는 범죄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지 말라고 책망합니다. 자기를 살피고 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시라는 이 말은 갈라짐이 있고 성만찬을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며, 공동체가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온전하게 선포하고 고백하라는 요구였습니다. 
바울은 32절에서 이러한 책망과 판단이 주에게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에 따르면 징계는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자는 최후 심판을 면하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심판을 피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올바른 방향으로 성도를 인도하는 꾸짖음입니다. 우리는 징계를 받음으로 인해 정죄함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공동체가 징계를 받고 마음과 행실을 돌이켜 심판을 피하기를 원했습니다.
33절: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이 구절은 오늘 바울의 권면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갈라져서 나뉘어져서 먹고 교제해서는 주가 왜 죽으셨는지를 선포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하나됨을 위해 자신의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다면, 공동체는 하나됨을 위해 힘써야 하고, 서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누구는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누구는 먹지 못해 굶주리다면, 이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리는 것이 아니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죽으심을 참되게 기리는 자는, 주가 바로 저 형제와 자매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고 그 형제와 자매를 기다려 주는 자입니다. 느려도, 주님은 우리가 서로 서로를 기다린 후에, 다 함께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등에서 꼴등을 가리는 분이 아니라, 꼴등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같이 기뻐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분이심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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