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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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11월 17일의 수기, 습관을 따라

jo_nghyuk 2022. 11. 17. 21:01

습관을 따라 제 때에 일어나고, 기도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가는 일은 성실하지만 열심을 내는 일은 아니다. 나는 열심으로 뜨거워지려 할 때면 자신의 시선 또한 가파라지지는 않는지 우려하게 된다. 먼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걷는 발걸음의 의미를 또한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열심은 먼 길을 가게 할 수 없다.

십수년이 지난 낡은 블로그에 습관을 따라 글을 쓰는 것은 큰 위안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를 바라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들을 의식하고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녹음실에서 연주하는 것을 원했던 연주자가 나는 공감이 간다. 관객은 연주자의 손을 보지만 청중은 연주자가 만드는 것을 감상한다. 말을 하고 듣는다고 소통이 아니며 글을 쓰고 읽는다고 이해가 아니다. 둘 사이의 어떤 울림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짧은 호흡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기 보다는 긴 휴지기를 가지고 생각을 형성한 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좋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스터디 모임이 나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분명히 이해해야 하고,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것들을 피하지 말고 하나 하나씩 다루는 작업을 반복해야만 한다. 이해가 불분명하면 설명과 표현이 모호하다. 스터디에서 누군가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거나 모호한 설명을 할 때면 집에 와서 그 부분을 다시 읽고, 추가적인 자료들을 공부해야 한다. 최근에는 비슷한 이유로 역사학적인 개념들과 씨름 중이다.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지나간 사건이 여전히 오늘 역사하고 있다.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나와 먼 사람들을 위해서도 공부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안다. 내 앞에 놓인 길은 암스테르담에서 하렘을 향하는 길만큼이나 길다. 당도하기 위해 페달을 굴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페달을 굴리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야 하며, 지금 달리는 길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꿈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열심히만 사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다만 습관을 따라 살았던 어떤 성실한 사람처럼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독일 사람들은 떨어진 낙옆들도 정돈해 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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