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12월 27일 저녁설교, 빌레몬서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12월 27일 저녁설교, 빌레몬서

jo_nghyuk 2023. 1. 9. 18:24
찬송: 502장 통 259
  • 빛의 사자들이여
말씀: 빌레몬서
  • 회복으로의 초대
 
바울은 오늘 갇힌 자로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 편지를 쓰는데, 감옥에서 만났던 오네시모 형제에 대한 내용으로 오늘 빌레몬서는 쓰여져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이미 잘못을 저지른 전과가 따로 있기에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노예인 오네시모는 주인을 떠난 죄 외에 다른 죄를 또 짓고 그 형벌로 감옥에 있다가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 오네시모가 회개하여 예수를 영접하였고 바울에게 아들 같이 섬기는 존재,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모든 사람은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노예나, 죄를 지은 자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하나님은 그를 새로운 존재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오네시모가 노예인데 주인을 버리고 달아난 죄에 대한 형벌은 최대 사형까지 구형되는 무거운 죄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고발하면 오네시모는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빌레몬의 분노는 이미 극에 달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 분노에 대해 오네시모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오네시모로서는 죽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지요.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오네시모가 져야 할 책임을 자신이 대신 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울은 빌레몬에게 말합니다. 내가 오네시모가 너에게 끼친 손해에 대한 대가를 다 지불하겠다. 대신 너는 오네시모와 관계를 회복하여라. 
바울은 8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도자로서 마땅히 명령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9절에서와 같이 “사랑으로 간구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자신과 빌레몬의 관계, 또는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만 이 관계의 회복의 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15절. 아마 그가 떠나게 된 것은 너와 영원히 있게 함이니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네시모가 돌아오는 것에 있었고, 오네시모가 도망친 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신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인간의 모든 허물들을 역사 속에서 또한 사용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완전하신 분입니다. 이 완전하신 분의 섭리에 대한 신앙이 회복되어야, 우리는 하나님의 미래의 뜻에 대해, 온전한 계획에 대해 순종의 발걸음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섭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의 맥락이 없다면, 용서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자유에 달려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14절 “나는 용서하라고 마땅히 명할 수 있다. 그러나 명령이 아니라 너의 순종이 억지가 아니라 너의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과 빌레몬이 동역자라고 17절에서 말합니다. 동역자라는 것은 서로간에 오해가 없고, 한 마음이며,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동역자로 칭함으로써 자신이 오네시모를 보는 관점을 빌레몬이 공유할 것을 요청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오네시모가 끼친 손해를 다 갚아줄 의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가 관계가 깨진 어떤 사람, 내가 원수처럼 여기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내가 그 사람을 보는 관점과 예수님이 그를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동역자로 여기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 사람을 보시는 관점을 우리도 공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완강히 저항합니다. “예수님, 예수님, 내가 받는 고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 사람의 하나님은 되시면서, 왜 나의 하나님은 되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하십니다. “나는 너를 동역자로 여기고 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해주었듯이 너도 저 사람의 죄를 사해주지 않겠느냐? 나는 너의 죄를 더이상 세지 않는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이 너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다 내 앞으로 계산하거라. 그러나 빌레몬 네가 나에게 빚진 것을 나는 말하지 않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원망되는 것들, 그것들을 다 내게로 쏟아내거라. 네가 속상하고 놀란 것들, 너의 상한 마음을 내가 다 계산해주겠다. 그것은 나에게 주거라. 내가 그것을 위해 죽었고, 그 대가를 치룰 것이다. 그런데, 너도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고, 나는 너의 죄악과 허물을 위해 죽었다. 나는 그것을 네 앞에서 계산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계산하지 않을 것이지만, 네가 속상하게 여기고, 힘들어하는 그것을 위해 나는 계산해주겠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질문하겠다. ”네가 지어야 하는 십자가는 어디에 있느냐? 내가 너를 위해 지어준 십자가 말고, 네가 나를 따르기 위해 지어야 하는 십자가 말이다.“
 
바울은 마지막에 인사에서 마가와 아리스다고와 데마와 누가를 문안 인사에 등장시킵니다. 이들은 분명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위해 걱정하고 중보하는 자들입니다. 이 명령을 하는 것이 바울 단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 회복을 향한 순종을 촉구하는 편지에 다수의 문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이들 모두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의 회복을 중보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중보의 자리에 서 있는지 질문하기를 원합니다.
중보의 자리에 서는 것은 영적인 힘이 필요한 일입니다. 중보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는 자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늘 물으십니다. ‘네가 원하는 회복이 이 땅에 도래하려면,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가 쌓여야 하겠느냐?’ 성도의 기도가 쌓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소망하는 그 회복의 역사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늘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꿈꾸고 계시며, 그 죄인이 탕감받고 용서받으며 용납받는 역사를 위해 일할 하나님의 동역자들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서는 죽임당한 어린 양만이 그 일을 감당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 일을 위해 대가를 치뤄야 하는데, 의로운 사람을 위해 대신 희생할 사람은 세상에 있을지 모르나 죄인을 위해 대신 희생할 이는 하나님 말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 죽임당한 어린 양 예수 덕분에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과 화해가 되었고, 사자 같은 왕의 통치 안에 들어가서 천국 복음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성탄절은 이렇게도 어둡고 추운 겨울에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예수께서 가장 어둡고 추운, 죄의 어둠으로 물든, 마귀가 통치하고 있는 이 땅에 사람이 되셔서 오신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 땅은 어둠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서야, 그 어둠의 권세는 산산히 깨어졌고, 예수님은 사자와 같이 마귀를 짓밟고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것은 가장 강하신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치루지 않아도 되는 댓가를 치루고 고난을 다 받으시고, 내 죄를 대신 계산하시고, 정산하시고, 끝내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부요한 자가 아니라면, 이 계산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강한 자가 아니라면 이 정산을 할 수 없습니다. 강하신 분이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약한 내가 강하게 되었고, 이제 우리는 이 계산과 정산을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난하지 않고 부하며, 약하지 않고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뜻모를 슬픔과 아픔에 대해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그 아픔과 슬픔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내가 너의 눈물을 눈물 병에 담아 계수하고 있다. 내가 너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너도 내가 너에게 했던 것처럼, 그 사람을 용서하고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악을 선으로 갚아서, 나의 사역의 동역자가 되어라”
우리는 부요한 자입니다. 우리는 강한 자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미움의 권세에 사로잡힐 자들이 아니라, 주의 용서의 십자가의 엄청난 능력으로 어둠들을 다 쫓아낼 그리스도의 승리의 냄새를 온 땅에 가득하게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사랑의 원자탄이 되어라. 일어나 빛을 발하여 만 백성이 그 빛을 보고 주의 십자가 앞에 나아오는 능력의 사자, 빛의 사자가 되거라. 순종함으로 자유함을 구가하며, 잃어버린 자를 주께 돌아오게 하는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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