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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그 프랑스인이 내 이름을 저녁, 하고 부를 때 나는 모든 윤곽이 흐물흐물, 뭉개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 프랑스 교수는 jo를 먼저 발음하고, ng가 자신의 나라에서 발화되는 방식으로 내 이름을 읽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jong hyuk종혁하고 발음할 것을 그 프랑스인은 jo nghyuk줘뇨끄라고 읽었는데, jong에서의 ng가 뒤로 밀려나면서 hyuk에 붙어서 마치 avingon*아비뇽의 ng처럼 새로운 화학작용이 일어난 것이다.안경을 벗고 사물을 보듯이, 나와 너 사이에 모호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가득할 때가 있다. 분명한 것들이 힘을 잃고 곤죽이 되고 으스러지고 비틀어지는 저녁의 시간이 올 때가 있다. 온갖 창조성으로 가득한 시간. ng가 jo 뒤에 붙어서 종이 되기도 하고, hyuk 앞에 ..
모네에게는 온화함을 잃지 않는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향한 균형감을 유지하지요. 파우스트처럼 균형감을 일부러 잃어버리는 화가도 있습니다. 재구성을 위한 모험을 하는 것일텐데 여력이 안될때 바닥에 나뒹구는 빛의 파편만 남게 됨을 보는 것처럼 무안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모네는 참 온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온화한 균형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보이지요. 그의 그림에서 탐욕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우리는 빛의 움직임 중에 있는 일렁이는 색조를 경험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는 철저히 빛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화가였으며, 그래서 전체 구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빛을 따라가다 보니, 그의 색조는 어느덧 희미한 파스텔 톤이 되었지요. 그의 그림은 무엇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