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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사람은 시인으로 이 땅에 산다" (dichterisch wohnt der Mensch). 시를 짓는 것이 단순히 헤매는 것이 아니고 건설을 통해 방황을 끝내는 것인 한, 시는 사람이 이 땅에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려면 언어와 나의 관계가 바뀌어야 한다. 언어가 말한다. 그때 사람은 언어가 자기에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언어에게 답한다. 그래서 훨덜린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시인으로 이 땅에 산다." 하늘과 신을 향한 마음과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실존 사이에 긴장이 유지될 때, 사람은 비로소 산다는 것이다. 시는 시를 짓는 재주 이상이다. 포이에시스(poiesis), 곧 창조이다. 가장 넓은 의미의 창조이다. 그런 뜻에서 시는 본래의 삶이다. 사람은 시인일 때만 산다.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내가 어떤 선함을 행하고 난 뒤에 전에라면 외롭다고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왜냐면 내 의지로 내 자아를 죽이려 했으니까. 모든 사람은 위로를 필요로 하고 용납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러하다. 그러나 입만 벌리고 있어서는 누군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내 쪽에서 찾아가고 위로하고 안아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쯤에서 자아의 질문이 시작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자신의 의지로 이 선하고 의로운 일을 행했다면: 나는 누가 위로할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나를 위로할 것인가? 내가 사람들의 연약을 품을 때, 나는 강해야 하는 것인가? 나의 이 연약은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굴 속으로 들어가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나여, 자신의 의지로 자아를 죽이며 이러한 일을 ..
나는 사실 노래에 있어서 표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사람이다. 톰 요크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할 때마다 양쪽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흐느끼는 것이 정서표현에 있어 굉장한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그의 라이브를 보면서 비로소 숙고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에 찬양인도를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항상 활짝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지인이었던 성악 출신 자매가 예배가 끝나고 "표정은 발성에 있어서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은 기쁨을 표현하고, 큰 소리와 열린 음을 내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표정이 발성의 확성기 역할을 해주는 것이리라. 나는 톰 요크의 표정이 이를테면 온갖 비애와 멜랑꼴리함, 냉소와 비판의 믹스츄어에 대한 훌륭한 증폭기 역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