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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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하나됨

jo_nghyuk 2012. 9. 24. 17:31
하나님은 언제나 이름을 먼저 부르시며 대화를 시작하신다. 나는 식물의 이름들을 많이 아는 사람을 동경해왔다. 박식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그는 개별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이다. 해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나도 사랑해야 겠다. (그때 그는 생에 대한 상향성을 얻는다) 관심이 없이는,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성령의 충만은, 생에 대한 관심이요, 약자와 그릇된 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견책을 가지게 한다. 아담의 직업이 이름을 짓고 부르는 자였다는 것은 그렇게 생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되게 하신 것이 선/악의 나뉘어짐과 강/약의 나누어짐으로, 남/녀의 나누어짐으로 분열되고 인간/신의 분리와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아담이 자신의 한 몸을 손가락질하며 "저 여자"라고 발화하는 순간 이 모든 단절과 분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저 뱀"이라고 하와가 말하는 순간 사람/동물(내지는 자연환경)의 분리 또한 일어났다.
이 모든 회복은 노아의 방주에 함께 한 동물들로 그 예표가 되어주고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이다. 다르지만 하나이고, 잘못했지만 하나이다. 소외시키지 말고, 버리지 말고, 유기하지 말라.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서 살아가는 것으로 변화시켜 주어라. 회복의 중보자가 되어라. 예수는 여전히 이름을 부르신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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