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꾸짖음은 힐링이다.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꾸짖음은 힐링이다.

jo_nghyuk 2012. 9. 26. 08:11
어렸을 때 나는 엄한 선생님을 더욱 존경하곤 했다. 물론 체벌은 아팠고 싫었지만, 나를 바르게 교정해주시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뭘 알겠냐만은, 적어도 선생님에게 맞는 매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던 듯 하다.
나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사랑에도 감격하지만, 하나님의 엄한 징계에도 감사하다. 왜냐면, 나를 엄히 대하는 이유는 자신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히브리서 12:6 새번역)

또, 징계를 받는 것은 그 뿐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신뢰와 같은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 징계할 수 있다는 것은 신뢰하는 것이다. 이 징계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절히 달음질하게 되고 사랑하게 될 것을 믿기 때문에 엄히 징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꾸짖지도 않는다.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히브리서 12:11-13 새번역)

똑바로 걸을 때에 오히려 치유가 있다. 주의 말씀에 대해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달음질할때 그 다리에 힐링이 있다. 오늘에서야 꿈 속에 왜 기이한 다리가 나왔는지 알 것 같다. 두려워하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침을 받으라는 사랑의 꾸짖음이었던 것이다. "똑바로 해라"는 말은 힐링을 향한 초청이다.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간극을 메우는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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