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편두통 가시 (행 9:1-25) 본문
편두통이 왔다. 이런저런 일들을 욕심을 내면서 했는데, 그게 탐욕이었던 것을 모르고 (아니 스스로를 속였을거다) 무리하게 행했던 것 같다. 기세가 등등한 사울처럼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이것을 또 저것을, 온 도시와 곳곳을 다니면서 강행하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프고 나니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내 힘이 아니다. 내 능이 아니다. 란 것을 다시 깨닫는다. 건강관리. 그 능력의 범주 안에서 살아야겠다. 아픈 이는 의존적이게 된다. 오는 길에 국진이 차를 타고 병원에 왔다. 의사의 하는 처방에 철저히 의존적이다.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은 후 바로 집에 왔다. 책을 읽을 때마다 편두통이 온다. 책을 덮고 잠이 들었다.
빛이시고, 음성이신 예수를 만난 이후로 사울은 눈이 먼다. 그 이후로 그는 제자들의 손에 인도를 받는다.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안수를 받는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난 후에 사울은 이제 예수를 그리스도 주라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핍박을 피해 제자들이 그를 광주리에 달아 내린다. 사울은 철저히 하나님 의존적인 사람이 된다. 외부에 의존적인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강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중에서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다메섹을 핍박하러 가던 사람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게 된다. 더욱 더 능력을 "얻어서"
나의 길과 그리스도의 길. 나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훼방하려는 그곳에서 (하나님에 열심을 낸다 하였지만) 그리스도로 변화를 받을 때 나는 연약해지고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일하게 된다. 자신만만한 것은 살기가 등등한 것과 같다. 내 능력으로 일하려 할 때 예수를 앞서기 쉽다.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내 능력이 아닌 약한 중에 강하게 하시는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약해본 사람은 겸손을 안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께, 이웃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운다. "나의 힘과 의지로 잘 해내겠다"는 마음은 인간의 실존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참된 인간의 실존은 사랑의 공동체이다. 서로의 연약을 돌보고hospitality 품어주고acceptance 이끌어주는 것rebuke 이다. 스스로 너무 강해지진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스스로 너무 잘나게 되진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친한 친구가 지나가는 소리로 "요즘 너 교만한 것 같아" 라고 한다. 웃으며 응수했지만 마음 속에 깊이 박힌다. 교만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 힘으로, 의지로 잘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게 자고함이라는 것이 아닐까.
편두통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주된 원인은 코에 있는 염증이라고 코 세척을 해준다. 편두통은 연관통이란다. 만약 내 생각(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하는)으로 편두통 소염제만 먹었다면 부분적인 효과는 볼 것이나 더 심한 염증을 치료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보다 남이 더 잘 알기도 하는 것이다. 그가 전문가라면 더더욱. 그리고 하나님은 이웃을 통해 이렇게 우리를 훈계하고 책망하시기도 한다. 위로의 알약과 더불어 말이다.
그나저나 코 세척 및 치료는 정말이지 심한 책망rebuke의 기분이 아닐 수 없다. 기계를 통해 왼쪽 코로 넣은 약물이 오른쪽 코로 나온다. 눈물이 핑 돈다. 약솜을 코 깊숙히 넣어서 5분간 있으라는데 회개 예식repentance가 따로 없다.
아프다. 그러나 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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