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믿음의 가능태 본문
고난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 의의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다. "너희 자신이 믿음 위에 있는가 시험하고" 그는 스스로가 믿음 위에서 선취되어진 완전히 의롭고 거룩한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의 경향성은 이제 의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현실을 보라. 그렇지 않다! 고 심한 부정과 저항을 그의 몸에 부딪히게 한다. (그의 몸 또한 거센 저항을 한다.)
여기서 그는 모순을 느낀다. 그는 새롭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환경과 몸은 그대로다! 라며 고집을 피운다.
자, 이제 우리는 싸움장에 들어선 것이다. 그것도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영과 육의 대립이 극심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너 자신의 몸이고, 이 사회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도 자주 개인의 성화를 강조한 나머지 공동체 사회의 성화를 잊어버렸다.)
나도 솔직히 이곳이 야생의 광야라기 보다는 사파리라고, 놀이공원이라고 웃어 넘기고 싶다. 그러나 그때 너는 "근시안이며, 앞을 못 보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실로 자신의 옛 죄가 깨끗하여 진 것을 믿지 못한다." (벧후 1:9)
믿지 않는다는 것은, 보는 것과 느끼는 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타협보다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지금 이곳 사이에 큰 도랑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현상유지를 하고 싶다면, 그는 불신앙적 비약 밖에는 취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는 "알고도" 죄를 범하고, 그를 합리화할 방안을 찾는데에 혈안이 된다.
나는 똑바로 말하겠다. 믿는다는 것은, 보는 것과 느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는 이미 "미래적인 것"을 선취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반대로 말하자면, 그가 미래라는 천성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화이다.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외치는 정태적이고, 현상유지적이고, 안정적이고, 자기쾌락적이고, 자아중심적인 그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exodus하는 것이 성화이며,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이다.
나는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도 길들여지지 않았는가?"
만약 내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고, 길들여져 있으며, 보이고, 느껴지고, 손짓하는 대로 살고 있다면, 나는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 내가 죄에서 깨끗함을 받았는가? 진정 나는 완전한 신적 거룩함을 소유하는가?"에 대한 믿음의 견고함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면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진정 거룩하다면, 나는 거룩하지 못한 것을 욕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성령은 우리를 향한 보호의 장을 열어주시고 붙드신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연약하고, 중간자적인 존재이므로, 이 믿음이 약해지고,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그리고 일어나는 것들에 요동하기 쉽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이것에 대한 지식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계속 내가 하려는 것은, 더욱 분발하기 위함이고, 더욱 굳세게 나가기 위함이다.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버리고 고난을 택하는 것 같지만, 이 길이야말로 생명의 평탄한 길임을, 걸을수록 너는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알고 있고, 또 받은 진리에 굳게 서 있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것들을 두고서 여러분을 일깨우려 합니다. 나는, 이 육신의 장막에 사는 동안,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서 분발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후서 1:3-13 새번역
여기서 그는 모순을 느낀다. 그는 새롭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환경과 몸은 그대로다! 라며 고집을 피운다.
자, 이제 우리는 싸움장에 들어선 것이다. 그것도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영과 육의 대립이 극심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너 자신의 몸이고, 이 사회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도 자주 개인의 성화를 강조한 나머지 공동체 사회의 성화를 잊어버렸다.)
나도 솔직히 이곳이 야생의 광야라기 보다는 사파리라고, 놀이공원이라고 웃어 넘기고 싶다. 그러나 그때 너는 "근시안이며, 앞을 못 보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실로 자신의 옛 죄가 깨끗하여 진 것을 믿지 못한다." (벧후 1:9)
믿지 않는다는 것은, 보는 것과 느끼는 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타협보다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지금 이곳 사이에 큰 도랑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현상유지를 하고 싶다면, 그는 불신앙적 비약 밖에는 취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는 "알고도" 죄를 범하고, 그를 합리화할 방안을 찾는데에 혈안이 된다.
나는 똑바로 말하겠다. 믿는다는 것은, 보는 것과 느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는 이미 "미래적인 것"을 선취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반대로 말하자면, 그가 미래라는 천성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화이다.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외치는 정태적이고, 현상유지적이고, 안정적이고, 자기쾌락적이고, 자아중심적인 그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exodus하는 것이 성화이며,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이다.
나는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도 길들여지지 않았는가?"
만약 내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고, 길들여져 있으며, 보이고, 느껴지고, 손짓하는 대로 살고 있다면, 나는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 내가 죄에서 깨끗함을 받았는가? 진정 나는 완전한 신적 거룩함을 소유하는가?"에 대한 믿음의 견고함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면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진정 거룩하다면, 나는 거룩하지 못한 것을 욕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성령은 우리를 향한 보호의 장을 열어주시고 붙드신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연약하고, 중간자적인 존재이므로, 이 믿음이 약해지고,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그리고 일어나는 것들에 요동하기 쉽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이것에 대한 지식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계속 내가 하려는 것은, 더욱 분발하기 위함이고, 더욱 굳세게 나가기 위함이다.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버리고 고난을 택하는 것 같지만, 이 길이야말로 생명의 평탄한 길임을, 걸을수록 너는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알고 있고, 또 받은 진리에 굳게 서 있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것들을 두고서 여러분을 일깨우려 합니다. 나는, 이 육신의 장막에 사는 동안,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서 분발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후서 1:3-13 새번역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