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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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작지만 큰 행복

jo_nghyuk 2012. 10. 8. 08:55
"불편함을 이기는 것은 순종이다"

김병년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신혼여행 때가 떠올랐다.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당시 나에게 권면을 해주는 선배 목사님들은 거의 대부분 주일을 한 주 빠지고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좋다고 말씀해주셨었다.
그러나 교회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불편함을 감수하는 순종"에 대한 마음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생각해보면 오히려 순종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평과 불만이 있을 때에는 절대로 그 불편함disadvantage를 이기지 못한다. 더 외롭고 힘들다. 그러나 그것을 순종과 감사로 화답할 때 우리 삶에는 더없이 놀라운 진보advance가 있음을 보게 된다.
최근 들어 육체적인 가시로 내 삶에 빗장을 걸어 잠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자주 본다.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욥기 38:10-11)

힘이 빠져야 인도함을 받는다. 내 힘이 잔뜩 들어간 사람은 그 의지대로 들나귀처럼 행할 뿐이다. 삼손과 같이 쓰임받고 싶은가, 다윗과 같이 쓰임받고 싶은가. 사울은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서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게 된다. 그 이후에 그에게는 가시가 하나 생겼다. 가시는 하나님의 방향타이다. (10/6 묵상 중에서)

하나님이 내게 정하시는 한계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의 방향타를 거스르지 않고 닻을 세우는 사람은 순탄하다. 스스로의 높은 파도가 사그라질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문빗장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틸리케가 말하듯 성령론적 윤리로만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또한 우리의 self-control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스스로의 한계limitation을 볼 때 자의적 초탈로 넘어가는 니체적인 시도를 할 것인가, 겸손히 엎드려 순종하는 가시의 사람이 될 것인가. 내 삶에서 하나님의 가시가 느껴질 때 그것은 은총이다. 그 은총의 결대로 살자. 아름답게 살자. 모든 극복은 성령의 결을 따라 이루어져야만 한다.

아침에 아내가 새벽기도 반주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다. 어제도 함께 새벽같이 나갔던 터라 더 눕고 싶다. 하지만 어둠 속에 아내 혼자 택시를 타는 것이 못내 불안해 세수만 하고 아내를 따라 나선다. 새벽기도에 하나님은 회개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 "하지 말라"에 대한 순종이 아닌 이번에는 "하라"고 명령하신 것에 대한 순종을 알려주신다. 네덜란드 친구 요스트는 항상 내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조니, 우리는 아내를 많이 사랑해줘야 해. 그게 하나님 명령이야." 아내의 작고 연약한 무릎을 붙들고 기도를 한다. '아내를 더 사랑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기도가 끝나고 우리는 교회 앞 크지 않은 (?) 비지니스 호텔에 가서 조식을 먹었다. 신혼여행 이후로 호텔 조식이 처음이다. 호텔 음식 자체가 그 이후 처음이다. 아내가 많이 행복해했다. 나도 행복했다. 좋아하는 베이컨과 커피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하이델베르크의 작은 호텔에서 먹은 조식을 항상 그리워했었다. 우리 생에서 호텔과 조식은 그 하루 뿐이었다. 우리는 그 날 아침을 떠올리며 행복한 조식을 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니 영수증을 점원이 테이블에 놓고 간다. 좀 많이 (?) 쌌다! 영수증에는 지역 주민 2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돈 만원에 우리는 더욱 행복해졌다. 주일 사역을 위해 4박 6일로 다녀온 짧지만 행복했던 신혼 여행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당시 우리 부부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순종에 놀라운 재정의 은혜를 주셔서 전혀 부족함 없는 (넘치는) 여행을 누릴 수가 있었다. 유럽에서의 4일이 전혀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아쉽거나 부족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벽기도 후의 생각지도 못하게 다소 저렴한 비지니스 호텔 조식을 먹으며 동일한 행복을 만끽했다. 아내는 돌아오며 버스 안에서 내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잠결에 아내가 했던 말은 '정말로 행복하다'라는 말이었다. 참으로 감사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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