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4월 19일 저녁기도회 복기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4월 19일 저녁기도회 복기

jo_nghyuk 2019. 4. 20. 03:08

18일의 복기를 쓰는 것을 깜박했다. 18일 저녁기도회 때 기도중에 거대하고 웅장한 제단의 그림을 보았다. 내가 힘을 다해 주를 추구하는 운동이 하나님에게는 제단의 형상화와도 같은가보다. 온 힘을 다하며 정성을 다하고 정교하고 공교하게 제단을 만들때 그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감격은 무엇과도 비할수 없다. 그에 대한 복기를 했었어야 하는데 하루만 지나도 무엇을 써야했었는지를 잊어버린다. 

19일 저녁기도회의 설교를 맡았다. 최근의 신앙의 결이 매우 힘찬 느낌이 있어서 요한계시록의 에베소 교회에 대한 편지로 설교 구절을 정했다. 아침기도회를 드리는데, 어제 잠시 삐끗해서인지 17일까지의 속력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봤다. 설교 구절을 요한계시록 2장 전체로 하려다가, 최대한 헬라어 구절을 번역할수 있는 분량으로 접근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좋은듯 해서, 1절부터 9절까지만 설교를 준비했다. 헬라어를 번역하고, 에베소 교회에 대한 배경지식을 읽고, 주석을 참고하고 뼈대를 맞췄다. 

점심에 청년 한명을 만나고 나서 카페에 가서 다시 설교를 다듬었다. 초고가 매우 거칠고, 감정적인 부분들이 있어서 다듬어나갔다. 설교를 완성하고 킨들로 빌립보서를 마저 읽었다. 바울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을 하는 부분을 만났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조용히 성경을 보는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휴식시간임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저녁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칼 바르트가 설교를 준비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거룩하고 무거운 말씀 앞에 한없이 두려워 떨던 그의 모습. 부디 그저 그런 마음으로 전하지 않게 해달라고,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당신을 경외하며 당신의 엄숙함을 목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저 마음이 가난해지기를 빌었다. 나를 피투성이에서 구하신 주님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나를 가난함과 비참함에서부터 출애굽하신 주님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다. 회중들 중에 진실되게 반응하는 이들에게 먼저 시선이 자꾸 갔다.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쪽에 더 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모든 사람 한사람 한사람과 시선을 맞추며 말씀을 전하려고 애썼다. 왜일까, 하나님은 왜 나를 계속 단단해지는 쪽으로 연단하실까. 왜 한량과도 같은 나를 금강석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실까. 바이마르에는 부드러운 사람들로 가득한데 왜 당신은 나를 견고한 방향으로 이끄시는 것입니까. 확실히 사람의 정체성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만 가겠습니다, 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그만 가라고 할때까지 가야하고, 멈추라고 할때는 멈춰야 한다. 나의 정체성은 당신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연단이라고 표현하지요. 부디 나를 종착역까지 이끌어가소서. 어디까지인지 나로서는 아직 가늠할수 없으나 당신의 손을 붙들고 이기기까지 싸워나가게 하소서. 

이상하다. 당신에게 뜨거워지고 나면 잠든 내 안의 갈망들이 확 깨어납니다. 봄에 움트는 모든 순처럼, 내가 무심하게 잠재운 것들이 다시 생명의 기지개를 폅니다. 나는 그래서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불가해하게 바라보게 되고, 활자들은 그림으로 변하고, 해석은 현상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지고 그저 내 안의 갈망들을 만나게 됩니다. 왜 당신은 다시 여기부터 시작하십니까, 라고 감히 묻지도 않겠습니다. 그냥 당신이 의로우므로, 나는 발견되어질 뿐이며, 발견할 뿐입니다. 나는 당신이 세팅해놓은 곳에서 출발하며, 당신이 풀어놓는 곳으로 물 속의 잉크처럼 풀어질 것입니다.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아골 골짝으로 가든지, 예루살렘으로 가든지, 에베소로 가든지, 로마로 가든지, 교토로 가든지, 서울로 가든지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당신이 가져가소서. 내가 갈망하는 것은 사도 빌립처럼 순전하게 성령의 인도로 나타나고 돌연 사라지는 행보를 보이는 것 뿐입니다. 나는 죽고 당신만이 살게 하시고, 내 자유가 아니라 당신이 내 안에서 충만하게 자유하소서. 마음껏 자유롭게 역사하소서. 나를 당신의 장에 풀어놓습니다. 나는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당신의 강한 팔이 나를 붙드십니다. 나는 새와도 같이 마음껏 활공할 뿐입니다. 그게 당신의 선물이며 당신이 맡긴 달란트입니다. 

성금요일에 설교의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주께 영광.

나의 노래로 주님의 성전을 지으리

높임을 받으소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 거하신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열방들아 주님을 찬송할찌어다 

그 발 아래 경배하라

영원한 통치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위대하신 왕 

그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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