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4월 27일 수기, lass mich 쉬ieren.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4월 27일 수기, lass mich 쉬ieren.

jo_nghyuk 2019. 4. 27. 20:28

며칠 전부터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주말에 약속들도 잡지 않고 시간을 비워두고 예정된 시간Zeitraum안에 마치리라 완고히 다짐해서였을까. 아침에 도무지 일어나기가 싫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왠일인지 자정까지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잠들었고, 7시 경에 눈이 떠져서 다시 잘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한 시간 여를 비비적거리다가 나왔다. 욕심을 버리자, 오늘 못 하면 내일까지 하면 어떠냐. 나의 스케쥴 때문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도 다 마다하면서 질주하려고 했는데, 부담 때문인지 스타트를 좀체 못 끊는다. 

마음을 비우고 오전 시간은 아내 청소를 살짝 도와주고, 기타를 치며 보냈다. 목소리가 돌아왔다.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 무슨 말인가. 목소리가 완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목소리는 대관절 어디에서 숙박하시면서 슈파겔이라도 드시고 계시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래도 너무 기뻤다. 프랑스어 찬양을 하는 것도 기뻤고, 진성을 어느 정도 내게 되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니. 돌아와 준 목소리가 내 귀에는 너무 jolie했다. 기타 치면서 든 생각인데, 아집이란 것을 버리면 사람이 많이 자유해진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 시일까지 끝내야 한다,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라고 하는 생각을 버리면. 그리고 잘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좋게 보여져야 한다, 라고 하는 소리를 씹어 버리면, 많이 가벼워지고 몸에 운율감이 회복된다.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잘 죽는 만큼 잘 사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얇은 햄Schinken을 썰어서 스크램블 에그를 하고, 토스트를 구워서 아내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에스프레소를 룽고Lunge 정도로 내렸다. 보난자에서 아내가 사다 준 에디오피아 사사바 원두인데 플랫 화이트나 시원한 얼음에 아메리카노로 마시면 적당히 맛있다. 귀찮아서 며칠 전에 갈아둔 원두로 내렸는데 맛이 없다. 주말 기도회 모임에는 신선하게 그라인딩해서 가져가 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인이 11시 넘어 잠시 집에 들린다는 데, 13시인 지금도 소식이 없다. 뭐 그러려니, 하면서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아침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도 엄마, 제가 번역 때문에 좀 바빠서 정신이 없으니 오는 주 월요일에 다시 통화해서 얘기해요, 하고 전화를 짧게 마쳤고, 주일에 시간 되냐는 신학부 친구 (라고 하기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외우고도 다시 자축인묘진사,까지 두 바퀴 째 되서야 녀석의 나이에 도달하는 Kollege) 에게도 미안, 15시에 예배하고 예배 이후에만 될 것 같아, 라고 모든 만남과 약속들을 번역의 공간 바깥으로 밀어 두었었다. 그런데 인생은 끊임 없이 새로운 화성이 침투해 들어오는 재즈 연주 같아서, 혼자 피아노를 두두두두, 두들겨도 안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나 보다. 생각해보니 다 내 식대로 효율적으로 처리하려고 계획했던 것 아니겠는가. 효율보다 사랑이라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해주는 데에 시간을 향유처럼 허비하고, 조금 욕을 먹더라도 사람 답게 일처리하고 그렇게 살면 안 될지 (욕해라 욕해).

건조대에 걸린 하얀 옥스퍼드 셔츠를 보면서 조용히 바깥의 나무를 응시하기도 하고, 졸졸졸, 유리컵에 물을 따르는 순간을 직관하기도 하고, 내 손가락들이 독일식 qwertz(y가 아니라 z)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수행의 순간을 감사함으로 관조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면 안 될까. 

멱살을 잡고 이것이 옳아, 어서 어서 좀 하자. 라고 나에게, 또 타인에게 채근하기 보다 그래, 그렇지. 하면서 지나치게 체구가 커서 오히려 귀여운 개가 잠시 멈춰 서려고 할 때 같이 멈춰 서는 그런 다정한 사람처럼 여유를 부리면서, 나보다 자유로운 내 마음의 자유로운 활강과 분자운동을 때로는 그냥 놓아두면서, 하늘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의 여백처럼 주어진 사실을 지각하고wahrnehmen, 지각도 하면서spät werden  사람답게 살면 안 될까. 

이렇게 말하는 나는 지난 7일간의 폭주 트럭과도 같던 나와 다른 타자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것도 나다, 하고 성급하게 아이덴티티를 통합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좀 떨어져 나와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현재를 살고 싶은 것이다. 나부터 좀 공간감이 있어야, 주말 기도회에 가든 사람들을 만나든 뭐라도 좀 쉴 것을 줄 수 있지 않겠나.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가 거하는 공간이 되시고,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하는 공간이 되시는데, 나도 여러분에게 쉬는 공간이 되려면 나부터가 좀 조용해지고 느릿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교토에 가고 싶다. 가서 다다미 방 위에서 죽도록 글을 쓰고 책을 읽다가 엎어져서 잠들어 버리고 싶다. 일어나면 부스스한 머리로 조리를 신고 동네 목욕탕에 가야지.

아내가 heiße schokolade를 해달라고 해서 스팀 밀크를 만드는 김에 에디오피아 원두로 라떼를 만들어 마셨는데 너무 맛이었어서 울 뻔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지인에게 혹시 오늘 11시 지나 오는 게 밤 11시 지나 오는 거냐고 문자를 했더니 깜박했다고 한다. 아, 귀여운 지인 같으니라고.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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