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9월 18일의 수기, oranje komt uit de eeuwigheid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9월 18일의 수기, oranje komt uit de eeuwigheid

jo_nghyuk 2019. 9. 19. 04:12

아침 기도회 후에 아내를 위해서 가을 꽃을 샀다. 집에 돌아와서 줄곧 설교를 작성했는데 계속 고쳐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체력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했다. 찬양 인도를 위한 콘티를 준비하는데 빛에 대해서 찬양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기타를 치면서 한 곡씩 준비하는데 유독 힘이 달렸다. 특별히 힘이 달리는 곡이 있어서 빼두었다. 힘이나 능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콘티를 구성하고 나니 힘이 달리던 곡을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위치시키게 되었다. 

기도회 준비를 하고 나니 한 시간 정도 짬이 났다. 자꾸 무언가를 주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경직된 자세를 내려놓고, 에스프레소를 리스트레토 정도로 내려서 작은 발코니로 난 문지방에 걸터앉아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빛을 쬐는 것으로 다시 사는 감각을 회복한다. 그리고 나서 좋아하는 책들을 읽었고, 에어팟, 아이폰, 지갑, 맥북만 챙겨서 교회 기도처로 향했다. 감각들은 정돈되어 있었고 시선은 명확하게 느껴졌다. 

아내가 아파서 반주를 사랑하는 청년에게 부탁했는데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 맞추어 부드럽게 하강운동하는 겸손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음악적인 센스가 반주에서 톡톡 튀는 것을 느꼈다. 예배의 시작부터 나는 예배의 즐거움과 부드러운 임재 속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소년과도 같았다. 부정신호보다 긍정신호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존재를 개방하고 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주황색 튤립을 환상 중에 보았다. 우리의 찬양은 튤립 꽃밭처럼 하늘을 머금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창조주의 선함과 인자함에 흠뻑 젖어 들어가는 감격과 즐거움은 내 언어가 지시하는 지시체를 훌쩍, 넘는다. 찬양을 준비하며 가장 힘이 달리던 곡에서 차원도약을 하듯, 가장 힘이 넘쳤다. 그 새로운 힘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네덜란드를 보았다. 내가 훈련 받았던, 암스테르담이 보이고, 그곳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기도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주황색 노을을 보았고, 아내에게 다음 주 있을 뒤셀도르프 여행에 암스테르담을 끼워 넣자고 말했다. 다음 주는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고, 우리는 정확히 그 날, 우리가 신혼 여행 때 있었고, 독일에 함께 들어올 때 관문으로 삼았던 암스테르담에 (독일어 미래 2식으로 표현하자면) 있게 되어질 예정이다. 내가 훈련 받았던 베이스 캠프 De Poort를 방문하고, 홍등가의 겨드랑이에 위치한 기도처 Cleft에 가보려고 한다. 환상을 따라가는 여행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실까?

주황색은 나에게 있어서 현실적인 색, 말하자면 이 세계의 색이 아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대기 안에서 태양이 호박죽처럼 곤죽이 되고 뒤틀려져 지평선에 왈칵, 쏟아지고, 그 사이로 난 창공에서는 사파이어처럼 영롱한 대기가 보이는 그 이상한 찰나가 나에게는 탄젠트 포인트와 같이, 영원이 시간을 만나고, 원이 직선을 스치는 세상에서 가장 짧고 동시에 긴 영원의 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태양이 지구를 스치는.

신이 십자가에서 박살이 나는. 

당신의 아픔이 나에게 희망의 미래가 되는 색.

Welkom in Ne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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