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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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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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_nghyuk 2019. 11. 17. 05:13

일본의 와세다 대학 화해연구소 소장이 우리 연구소를 방문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한일관계의 갈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일본 측의 시각이 어떻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서도 눈 앞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직면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상기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교수는 calm down해달라고 내가 질문하기도 전에 나에게 부탁을 했다. 화해의 프로세스를 위해 감정에서의 detachment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감정도 하나의 컨텍스트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내가 반박해야만 했던 두가지는, 소녀상 설치가 정치적인 활용이 된다는 그들의 견해와 교과서의 우편향적인 역사 기술에 대한 문제였다.

소녀상 설치 문제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memory activism에 속하는, 과거에 무엇이 일어났으며, 그 과오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기억의 작업에 속한다. 그것을 political utilization으로 읽는 해석은, 상대의 고통에 대해 직면하지 않는 스탠스이다. 화해 프로세스는 상대의 고통에 대한 recognition(Anerkennung)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나의 지도교수는 그의 프레젠테이션 이후에, 상대의 고통에 대해 인지하는 것은 화해에 있어서 본질적인 부분이며, 필요하다면 가능한 한 지속적으로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최소한 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정부간의 한일위안부 합의가 어떤 지점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지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정부간의 합의는 시민들의 합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시대가 그렇게 변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변해서 개인의 심리적인 부분들이 부각되었다는 그의 주장과 반대로, 나는 시대라고 하는 시간 자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에 개개인이 부각되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사회)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가(사회)와 개인은 분리할 수 없지만, 구별되어야 한다. inter-national한 문제와 inter-personal한 문제는 서로 유기체처럼 얽혀 있는 문제이지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거기에 그와 나의 입장 차이가 있다.  

이 연구소에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굳이 내가 일일이 이 일본인 교수의 말에 반박하지 않아도, 이미 화해 연구에 대한 concensus가 형성되어 있어서, 내가 문제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은 다른 연구원들 또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미 반박하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그러한 공통감각적인 현상을 보며, 나는 어쩌면 화해 프로세스는 당사자들을 보다 넓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여서 다자간에 함께 전개해나갈 수 있는 공감대(또는 common sense, 가다머적 의미에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질문해보게 되었다. 아사노 상은 끝나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장상은 독일 유학이 끝나고 목사가 될 거냐고, 부디 교수가 되어서 화해 연구를 계속 해달라고, 그리고 꼭 다시 만나자고. 나는 그를 기차역까지 바래다 주었고, 그는 자기의 발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재차 물었다. 자신은 중립적이게 되려고 노력했지만 일본인으로서의 bias가 보이지 않았느냐고. 나는 말을 삼키고 삼켜서 당신이 자신의 한계 안에서 매우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고 말해주고 그를 공항으로 보내주었다.

주말에 10시간을 내리 잤다. 그게 나라고 하는 사람의 한계를 보여주는 현상 아닐까. 자꾸 구부러진다. 앞으로 잘 나아갔으면 하는데.

지난 여름 모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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