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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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큰 산

jo_nghyuk 2019. 11. 21. 22:05

아침에 미주 장신대의 총장님을 잠시 만났다. 적당히 소탈하고 적당히 말수가 적은, 목회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내가 연구하는 화해의 주제에 대해 매우 관심을 보이셨던 것 같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면서 앉아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대화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그의 말에서 목사로서의,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오후에 세미나가 있어서 오전에 예나 도서관에서 후설에 대한 논문을 조금 진행시켰다. 나는 목사로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기에 도서관에 앉아서 피로감 없는 쾌청한 연구를 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신대원 입시 때에는 물리적인 조건보다는 심리적인 조건이 열악했다. 마음의 구름이 끼지 않은 날이 독일의 맑은 하늘처럼 일년에 몇 번 없었던 듯 하다. 그 어떤 학자보다도 에드문트 후설은 나에게 큰 산이다. 그런데 이 큰 산을 묵직한 배낭을 메고 등정해야 하는 기분이라면, 푸념일까. 아무튼 먼저 유학생활을 시작한 선배로부터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조언을 듣고 다시 젖은 낙옆을 밟으며 큰 산을 오른다.

큰 산을 오를 때면, 정말 고독하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하면서 히말라야를 올랐다고 하는데, 가장 큰 적은 외로운 감정에 끼어들려 하는 잡다한 충동들이다. 충분히 외로워질 각오로 늘 교토를 방문할 때면, 그보다 더한 고독이 나를 삼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강해지거나, 울면서 산을 내려오던 메스너처럼 되거나.

큰 산과 같은 사람은 말수가 적다. 말을 하지 않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고요하게 움츠릴 줄 아는 사람은 정확하게 내뻗을 때를 알며, 뻗는 그 선에는 단정함이 깃들어 있다. 그는 단순하지만 지혜롭다. 늘 분명한 현실성 안에 거하고 있으며, 그의 고뇌는 정직함 때문에 이루어지지, 사사로운 것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단순성이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우아함은 기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며, 기품은 그의 존재론적 본질이 고귀할 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비틀거리며, 느릿 느릿하게 산을 오르곤 했다. 아니 기어서 오를 때가 더 많았다. 기어서라도 오르는 것이 내게는 기백이다. 큰 산은 오래 걸린다.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만드는 것을 창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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