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3일 아침설교, 누가복음 2:1-20 본문
8월 3일 화요일 새벽기도회
찬송 96장 통 94
- 예수님은 누구신가
말씀 누가복음 2:1-20
- 낮아지신 그곳에 평화가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로마의 황제가 천하에 호적명령을 내립니다. 사실 로마의 호적제도는 매우 간편하게 되어 있어서 고향으로 가지 않아도 호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자신들의 고향까지 찾아가 호적을 합니다. 누가는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이 다윗의 집 족속인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셉의 동네는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인데 이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입니다. 성경기자인 누가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비천한 환경에서 태어났는지를 중점적으로 묘사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십니다. 7절을 보니 여관에 거할 곳이 없어서 여관주인의 배려로 마굿간에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가난한 동네에 태어난 것 뿐만 아니라 가장 비천한 곳인 마굿간의 구유에서 태어나십니다.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목자들 역시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며, 부정한 사람들로 여겨지던 계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소식은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이들에게 알려진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낮고 천한 자들에게 알려졌음을 누가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는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 그리고 그 표적으로 그 구주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을 것이다. 마치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어린 나귀를 타신 겸손한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하물며 천사의 등장도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다고 하는데 아기 예수의 탄생은 생각보다 매우 소탈하고 비천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때 13절을 보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합니다. 14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사람들에게는 평화라는 이 말은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화해를 성취하시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성취하시는 중보자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는 큰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화해자가 되시기 위해,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여전히 높은 곳에 머물러 있고, 죄인들과 가난한 자들을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화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화해는 예수님께서 비천한 자리에 내려오시고, 구유에 누이시고, 비천한 동네에서 사셨기 때문에, 즉 말 그대로 "우리 가운데에" 계셨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높은 곳에 홀로 거하는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찾아오는 사랑입니다. 종의 형체를 입으신 주님 덕분에, 그 주님의 중보 덕분에 우리들은 구원받을 수 있고, 다시 빛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에 오셔서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읽는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의 평화가 있습니까? 나의 삶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삶을 통해 성취하신 화해의 흔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낮아진 삶을 살고 있는가? 주님은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나아갈 때 높은 자세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비천함을 마다하지 않고 주님과 같이 낮은 마음으로 화해를 위해, 더 낮은 곳으로 나아가는가?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와 화해하시기 위해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낮아지는 자가 가장 큰 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겸손의 성품만을 강조하는 말이 아닙니다. 가장 낮아져서 이웃을 섬기는 자가 하나님의 화해 사역을 감당하는 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평화, 하나님에게는 영광이 되는 삶을 사는 큰 자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10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은 이방인들의 빛이십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에게까지 나아가기 위해 예수님은 비천한 삶의 한 가운데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낮아지신 그곳에 평화가 임했습니다. 그것을 오늘 누가복음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평화의 사역을 감당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낮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낮아지는 것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낮아진 그곳에는 평화와 화해를 불러옵니다. 우리 모두가 겸손하여지고 낮아져서 주께 쓰임받는 화해와 평화의 통로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