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5일 아침설교, 누가복음 4:20-44 본문
8월 5일 목요일 새벽기도회
찬송 539장 통 483
-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말씀 누가복음 4:20-44
-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21절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임하였느니라" 주의 은혜의 해는 오늘입니다. 오늘 구원받을 날이요 결단을 내려야 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은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주의 음성은 오늘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그리고 결단은 오늘, 즉 음성이 들려오는 지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오늘"은 오랫동안 머무는 시간이 아닙니다. 주의 음성이 들려오는 은혜의 때가 있고, 그 기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버리면 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4장의 후반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올 때 사람들이 얼마나 완고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22절은 분명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을 사람들이 놀랍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응은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가난한 동네 나사렛에서 비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점에 집중하고,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참된 하나님의 복음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23절에서 속담을 인용합니다.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이 말은 네가 의사라면 너의 병을 고침으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보이신 이적을 이곳에서도 해서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요청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주지 않으시고,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엘리야의 예를 드시는데,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엘리야조차도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 중에 한 과부만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믿었고, 엘리사 또한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믿음으로 고쳐진 것은 나아만 장군 한 사람 뿐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람 모두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이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보낸 선지자가 이스라엘에서 배척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가장 먼저 보냄을 받으셨지만, 이스라엘이 완고하여 예수의 말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고 예수님은 그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와 다른 동네로 가십니다.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오셨는데 그곳 사람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다고 32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사람들은 놀랐지만 믿었다는 말은 여전히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첫 등장인물은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봅니다. 34절, "아 나사렛 예수여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말은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귀신의 고백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귀신을 그 사람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사람들은 또다시 놀라서 예수의 권위와 능력에 대해 감탄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이 믿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소문만 퍼져나갈 뿐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시몬은 베드로를 의미합니다. 장모가 중한 열병에 걸렸는데 "붙들린지라"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장모의 열병이 만성적인 것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열병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이 마치 풍랑을 꾸짖으셔서 잠잠케 하시듯이, 하나님이 홍해를 꾸짖으셔서 갈라지게 하셨다고 시편이 고백하듯이, 이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복종합니다. (놀랍게도 귀신도 열병도 자연도 다 복종하는데 사람만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열병은 떠나고 장모는 병에서 놓여 일어나 예수님을 수종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이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시고 고치셨다고 40절은 말합니다. 그중에는 귀신들린 자들도 있었는데 귀신들이 나가며 다시 고백합니다. 41절,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고백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역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날이 밝을 때에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1:35는 예수께서 동이 트기 전에 기도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예수께서는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를 하시며 늘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나오는 성령충만의 능력입니다. 또 한가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께서 무리들 사이에 머무시지 않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는 것과 무리가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류할 때에도 다른 동네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떠나시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사람들을 고치시는 데에 온 힘을 쏟는 동시에,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고독하게 나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영성은 이 두가지 모습, 사랑과 고독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심과 동시에 고치심이었음을 오늘 구절은 증언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영성은 사람들을 떠나 고독하게 하나님과의 교제로,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다음 장소로 떠나는 영성입니다. 이 균형잡힌 영성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사역 뒤에는 다시 고독한 영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 하나님과 독대하고, 또 부르시는 다음 장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균형잡인 영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사람들의 인정과 상관없이 하셨습니다. 자신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동네에서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굳게 붙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만 붙들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균형잡힌 영성을 가진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