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9월 29일 새벽설교, 누가복음 18:18-34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9월 29일 새벽설교, 누가복음 18:18-34

jo_nghyuk 2021. 9. 29. 21:28

9월 29일 수요일 새벽기도회

찬송 425장 통 217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말씀 누가복음 18:18-34

  • 한 가지 부족한 것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어제 우리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영적 교만이나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 행위인지도 보았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 관리가 예수께 나아와 이렇게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를 선한 선생으로 부르는 것에서 이 관리는 "선함"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 자체가 조금 엉뚱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은 무엇을 하여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관리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고 되묻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하십니다. 이 말은 선의 기준을 엄청나게 높여버리는 말입니다. 이 관리는 아마도 자신의 선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등의 십일조 계명을 말씀하실 때에 자신은 그것을 다 지켰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다 행하여도 선함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계명을 지키시지만 하나님만이 선한 분이라고 대답합니다. 참된 선함의 기준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관리에게 "네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고 대답하십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재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명령을 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고 나서 나를 따르라"

이 관리는 크게 근심합니다. 이 관리에게 재물이 많아서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는 다른 명령은 다 지켰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 하는 이 래디컬한 명령 앞에 근심하기 시작합니다. 

에수님은 그가 가진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하늘에서 큰 보화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분명한 상급이 있습니다. 그 상급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관리는 자기 자신이 계명을 다 잘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한가지를 예수님에게 허를 찔립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 탐심을 버리라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이웃 사랑을 위한 수단입니다. 에수님의 명령은 재물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관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자, 이제 이 관리가 지켜내던 계명들을 살펴봅시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언, 부모공경에 관한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이웃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계명은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당연히 모두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소극적인 계명으로서 "- 하지 말라"는 부정명령의 계명입니다. 부모사랑은 엄밀히 말해 가족사랑이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관리에게 이웃사랑의 적극적인 계명을 주십니다. 가진 것을 희생해서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나서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말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듣고 그러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묻습니다. 저 사람처럼 계명을 잘 지키고도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해서 천국에 못 가면 대체 누가 가느냐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그렇습니다.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관리가 "선한 선생님이여"하고 물을 때부터 이에게는 선한 일들을 축적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선함의 기준을 하나님에게까지 올려버림으로 그 누구도 천국에 갈 자격이 없음을 설파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7절: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말은 사람이 천국에 자기 힘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선한 이가 들어가는 데 천국에 들어갈 만한 선한 이가 사람 중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사역이 됩니다.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약간 우쭐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사실 올바르지 않은 고백이지만 예수님은 이에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해 버리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고 친절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말씀은 그 다음에 등장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신 후에 자신이 받을 고난과 자신이 겪어야 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기대하거나 예상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34절을 보니 제자들이 이를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숨은 것을 드러내 보여주시지 아니하시면 천국의 비밀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제자들을 예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우쭐하는 제자를 예수님은 책망하기보다 격려해주십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꼭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가능합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가능해집니다. 제자들의 부르심도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의 자유의지의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 세대에서, 이 세상에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직업과 사회적 위치와 가족과 친구와 집과 모든 안정된 것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주를 위해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따르라"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정말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성령에 의한 것이든,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관리의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나는 선생이 아니라 너의 주다. 너는 무엇을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주로 영접하고 네가 의지하던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너를 위해 사용하던 것들을 이제는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네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나를 따라야 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믿는다는 것의 정의는 오늘 예수님이 내리십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내가 믿고 의지하는 다른 모든 것에서 내가 죽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내가 가려는 길이 아니라 주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해주시기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전에 누가복음을 다루며 나누었지만 믿음의 분량이 작아서 따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순종의 한걸음을 내딛지 않기 때문에 믿음을 선물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의지를 거스르는 선물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이 관리는 근심할 필요가 없이 믿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 주시는 참된 믿음이 생겨나기를 원합니다. 작은 순종의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살아있는 믿음이 역사하길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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