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얼음조각 속에서 본문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얼음조각 속에서

jo_nghyuk 2022. 2. 1. 02:10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강변을 걷고 공항에 지인을 배웅하고 다시 지인이 있는 도시로 향하는 중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향하는 여정이 참 오랜만이다. 다른 지역에서 다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얼마만인가. 내일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에서 현상학 자료들을 숨죽이며 찾아보고 다시 강변을 걷고 다시 커피를 마실 것이다. 

부스터 샷을 맞은 후에 백신의 부작용인지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다. 사람이 많은 곳을 가거나 피곤하거나 또는 스트레스가 많으면 더욱 빈번하게 숨이 차오른다. 헤겔 수업을 들으면 너무나 즐겁다가도 한편으로는 머리 속의 팬소음이 비행기 이륙소리에 가까운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뜨겁게 달궈진 삶의 메인보드에 냉각팬 역할을 해주는 것을 찾을 수 없을 때에 현대인의 병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백신 부작용으로만 생각했는데, 부작용이 표면으로 이끌어낸 내 안의 잠재적 아픔은 아니었을지. 어디선가 내 몸에 난 균열 사이로 뜨거운 숨이 자꾸 헐떡거리며 흘러나온다. 내 안은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어.

참을 수가 없어서 지인을 공항에 배웅하기로 한 바로 전날 일정을 변경하였다. 대학 도서관과 강과 숲이 있는 먼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후설이 베르나우라 하는 휴양도시의 숲을 거닐었듯이 나도 녹이 슬어버린 폐를 집어들고 자연의 겨드랑이 속에 있는 듯한 이 고도에 들어가서 내 삶의 시계를 다시 느리게 동기화할 생각이다.

기차는 이제 하이델베르크의 산자락 사이로 들어서는 중이다. 이 순간 ICE가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느껴진다. 이 고도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