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미친 여정의 복기 2, 도쿄 8월 29일 본문
5시에 눈이 떠졌다. 숙소 근처의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청수사와 난젠지 일대를 산책했다. 수로각 아래 앉아 한참을 빗소리를 들었다. 정주하기 위해 온 여행에서 나는 이 땅의 것들의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지나가야 다가오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교토에 머무를수는 없다. 거대한 수증기가 나를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지만 위협적인 바람을 피해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향했다. 거센 비로 인해 나고야 부근에서 발이 잠시 묶여 있었지만 비교적 무사히 도쿄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는 내가 건너온 도카이선을 운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내 트랙리스트에는 파도의 포말이 그려진 힐송의 독일어 버전이 있었고 이날 나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을 보았다. 우버를 타고 기요스미 지역의 iki에 가서 원두를 샀다. 문을 닫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커피는 블루보틀에서 마셨다. 다시 우버를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와 볶음밥과 가라아게를 시켜 먹었다.
정확히 내가 계획했던 만큼만 움직이고 있다. 안도 다다오의 건물을 볼까 했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한참을 쉬었다. 나는 덧없는 인간이다. 연약한 동시에 행동하고 있는 호쿠사이의 풍랑 속 뱃사람들처럼 나는 거대한 수증기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멈추는 순간 나는 일본에 갇히게 될 것이다. 전도서의 기자는 모든 삶이 수증기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제임스 스미스는 삶이 수증기라는 것이 무의미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짧고 빈약하고, 유동적이고 녹아 없어지고 붙잡기 어려울 뿐이다. 나를 추격하는 것은 거대한 수증기이지만 그만큼 나의 삶을 추동하는 동인이기도 하다. 나는 더 짧게 머무르고 더 힘차게 내달려야 했다. 덧없기 때문에 잠시만 머물러야 했고 덧없기 때문에 더욱 힘차게 살아내야 했다. 덧없고 유약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해야 했다.
짧았던 만큼 나는 내 미친 달리기를 거듭 복기하는 중이다. 나의 달리기는 미래적이기보단 근원적이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야 했고 다다라야 하는 곳을 다다라야 했다. 그리고 무사히 귀환해야 했다.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는 달리기가 아니라 이전에 만났던 장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내달리는 몸짓에 가까웠다. 나는 숙소 침대에 누워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물었다. 교토에 정주하고 싶던 나는 태풍에 떠밀리고 약속에 끌어당겨져서 생각지도 않던 도쿄역 앞의 숙소에 몸을 싣고 있다. 머무름과 달리기는 그러나 공존한다. 나는 몇시간을 달리는 신칸센 안에서 안도 다다오의 자전을 읽고, 삿포로를 향하는 내용의 소설을 읽었다. 기차 안에 있을때 나는 달리는 동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달리기 자체가 좋아서 굳이 비행기가 아니라 기차로 삿포로까지 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내 여행은 내내 타임어택처럼 급박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숨고르기를 하듯 머무는 순간도 분명 존재했다. 내달릴 때에는 달음질해야 했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숨구멍을 내고자 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그 미친 리듬의 달리기도 즐거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