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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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에서, 중단된 것에 대하여

jo_nghyuk 2025. 1. 15. 11:44

나의 유학의 마지막은 기차여행이었다. 베를린을 거쳐 함부르크에 도착한 나는 코펜하겐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기차는 북독일에서 기술상 문제로 정차했다가 접경지역을 지나 활처럼 생긴 덴마크 반도를 가로질렀다. 내 기차는 29유로짜리였고 숙소는 40유로짜리였다. 가진 것이 없어도 떠나고자 하는 열망만으로 시작되는 여행이 있다. 뉴욕에서 1불짜리 핫도그를 파는 스트리트를 찾아 헤맬 때와 자전거로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네덜란드 도시에서 60센트 짜리 빵을 사먹던 때가 있다. 고생은 다 이야기거리가 된다.

결핍에서 생겨나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독일 골목 허름한 빵집의 빵냄새, 등이 굽은 안토니오 씨가 화덕에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꺼내어 아무렇게나 6등분하여 내놓고 에스프레소를 낡은 머신에서 뽑아 마시던 그 풍경, 학교 도서관 앞 계단에 프리츠 콜라를 내려놓고 해를 쬐던 어떤 봄과 여름. 

코펜하겐에 도착하니 게스트하우스 로비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체스 놀이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혼자 도착한 나는 조용히 숙소에 들어가 가방을 껴안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토브할렌 시장에 가서 플랫 화이트를 마셨다. 기차를 타고 외레순 다리를 건너 말뫼에 도착했다. 말뫼는 유학 초기 시절 멜다우 공연을 예매했다가 비자 문제로 가보지 못한 곳이다. 꺾인 열망에서 새순이 돋는 감정이었다. 공연은 지나가고 없지만 공간은 남아있었다. 나는 천천히 말뫼의 시내구석구석을 산책하였고 미대 건물에 들어가 학생식당에서 커피를 사 마셨다. 

나는 불과 얼음이며 혼재이며 질서이다. 때로는 혼란한 폭발을 이루고 다시 질서를 되찾는다. 살아있는 현재는 가까운 과거와 가까운 미래를 수정하며 존재한다. 나는 나의 존재를 계속 수정하며 존재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기에 사람들은 나를 더 모를 것이다. 지난 여름에 일본 열도를 일주했다. 폭발력을 가지고 나아가는 기쁨이 있다. 열정적으로 사는 삶의 기쁨이 있다. 다음에는 예테보리까지 달리고 싶다. 말뫼에서 끊어진 열망은 이제 예테보리를 보게 한다. Götteborg. 도시의 이름에서 태곳적 어떤 존재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을 느낀다. 중단은 재시작에 대한 소망을 준다. 중단된 것, 유보된 것은 그것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휴지기에 다름 아니다. 

어렸을 때 나는 자꾸 어딘가를 하염없이 가는 아이였다고 어머니는 회상하신다. 그래서 나에게서 눈을 떼면 잃어버릴 때가 많았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어도 나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느긋하게 살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정열적인 삶의 기쁨도 잘 알고 있다. 나의 리듬은 점점 시인의 환상통과 소설가의 멀미 사이를 오가는 중이다. 그때 헬싱보리에서 허리를 다친 지인과 영상통화를 했었다. 나 역시 허리가 아파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함부르크를 거쳐 코펜하겐에 오르는 기차의 여정에는 선형적 시간의 로망이 있다. 긴 기다림의 끝에 고대하던 바를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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