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10월 1일 저녁설교, 누가복음 20:20-26 본문
10월 1일 금요일 저녁기도회
찬송 22장 통 26
- 만유의 주 앞에
말씀 누가복음 20:20-26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이제 사람들은 예수를 총독에게 넘기려는 시도를 꾀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게 되실 날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엿보다가 정탐을 보냅니다. 정탐받은 자라고 하는 단어는 스파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신실한 사람인 척하면서 예수님의 말을 책잡기 위해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21절에서 예수님에게 하는 칭찬은 그들의 아첨입니다. 그들은 아첨을 한 뒤에 질문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대답해도 함정이 있습니다. 당시에 열심당원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을 억압하는 식민통치국가에게 세금을 바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금을 바쳐도 된다고 하면, 이들은 예수님에게서 배제되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반대로 세금을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열심당원들처럼 예수님이 대답하시면, 예수님은 바로 로마 군에게 잡혀갈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러한 경우에 예수님을 잡아 총독에게 넘기려는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접근하여 이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21절의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오직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신다는 말은 당신이 이 질문에 대해 당신의 신념대로 옳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라는 이들의 예상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예상은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3절에서 누가는 예수께서 이들을 간계를 아셨다고 기술합니다. 이들의 질문은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로잡으려는 교활한 의도가 숨어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이들에게 바른 답을 주십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보이면서 거기에 누구의 형상과 글이 있냐고 물으십니다. 거기에는 로마의 가이사인 티베리우스가 그려져 있었고 그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질문을 한 자는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화폐에 가이사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통치 하에 있고 로마의 법 아래 있고 가이사의 다스림 안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흔히 이 대답은 마치 두 왕국의 통치를 합법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이사의 통치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의 통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사의 나라에서는 가이사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두 왕국 통치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그와 다릅니다. 가이사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속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당원들이 그렇기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그렇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 것을 말하십니다. 가이사의 권력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대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어서 "하나님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나온 열 므나의 비유, 포도원 주인의 비유처럼 이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이사는 그것을 청지기로서, 또는 농부로서 대신 수행하는 역할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포도원을 자기 뜻대로 욕심대로 지배할 때,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가이사의 통치권을 다시 빼앗으실 수 있는 참된 주권자입니다. 국가의 통치자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비유는 크게 두 군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영광과 주권에 취하였을 때에,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처럼 살고 왕위를 잃을 것이다. 7년이 지나 지극히 높으신 이가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것을 알기까지 너는 짐승처럼 살 것이다" (단 4:28-33)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광야에서 7년을 짐승처럼 이성 없이 방황한 후에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왕위를 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은 이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영원한 권세를 인정합니다.
또 하나는 신약에 나오는 헤롯 왕 이야기입니다. (행 12:20-25) 헤롯이 백성에게 연설할 때에 백성이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라고 할 때에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아서 주의 사자가 그를 칩니다.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국가의 통치자는 하나님의 주권에서 부여된 청지기직이며, 영원한 권세자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이사보다 높은 분이 진정한 통치자시다. 가이사조차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이 세운 가이사에게,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쳐라.
우리는 국가를 위해 기도할 때 통치자가, 지도자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권력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도자를 위해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와 국가의 법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것은, 권력자를 세우신 것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바울은 로마서 13:1에서 말합니다. 권세자들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계수하고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권세에 대한 복종을 통해 또한 겸비해지고 하나님을 향한 복종을 질서 가운데에 배웁니다. 만약 복종을 모르고 저항만을 외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무런 책임이 없이 권리만을 주장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일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오늘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바칠 수 있도록 우리의 지도자들을 위해 권세자들을 위해 마땅히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도 바이마르 도시와 독일 국가를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그들의 통치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통치가 올바른 지도자를 통해 드러날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