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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여정의 복기 1, 교토 8월 28일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미친 여정의 복기 1, 교토 8월 28일

jo_nghyuk 2024. 9. 1. 16:08

과거의 흔적이 현재를 만나면 기억이 재구성된다. 기억 뿐 아니라 현재도 재구성된다. 간사이 공항에서 나오며 나는 교수님과 처음 컨택을 하던 때와, 교수님과 함께 이곳으로 향하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의 나와 기억 속의 두 나는 모두 같은 신칸센 안에 있다. 태풍은 가고시마에 머물고 있었다. 신칸센은 당장 운휴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일본 뉴스는 말하고 있었다. 내 현재가 태풍이 갈겨대는 잭슨 폴록스러운 즉흥 추상화같이 여겨졌다.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움직이는 태풍의 추격을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세계는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 나 또한 운동하고 있으며 저 태풍처럼 자신의 바깥으로 뻗어나가며 존재한다. 태풍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듯이, 나 또한 무언가를 타고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도지역에 도착했다. 이십대 대학생으로서 방문했던 게스트하우스는 사라지고 사십대 아저씨가 되어 비지니스 호텔에 머물렀다. 호텔 앞의 북오프 서점을 간단히 훑고 근처의 오꼬노미야끼 식당에 가서 우롱차와 모던야끼를 먹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인데 구글 평처럼 오꼬노미야끼에서 팬케이크 맛이 났다. 야끼소바는 간이 부족했다. 사실은 이런 아무렇지도 않은 로컬 식당에 오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가려다가 교토의 가모가와 야경을 보기로 했다. 시조 대교 위에서 누군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강변에 앉아 여름 밤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에마뉘엘은 "향유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모가와를 바라보는 다리 위에서 대학생 시절의 나, 군제대를 한 이후의 나, 결혼을 한 이후의 나, 아버지가 되어버린 나를 모두 만났다.

세대교체는 이상하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아버지는 더는 존재하지 않고 없었던 아들이 존재한다. 아버지가 되어버린 나는 내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과 돌봄을 비슷하게 내 아들에게 준다. 아들이었던 내가 받은 감정 그대로 아버지로서 내 아들에게 주는 이상한 역할의 스위치,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아무 무리하여 사주셨던 커다란 로보트를 지금도 기억한다.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 나는 아버지와 비슷한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해나가는 듯 하다. 그래서 배운다는 것은 따라한다는 것이고 따라하는 것은 그 사람'처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숙소에 돌아왔다. 숙소 앞 로손 편의점에서 미다라시 당고와 푸딩을 샀다. 일본에 가면 늘 똑같은 짓을 한다. 이건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닐테고 과거의 경험이 반복되어 하나의 습성이 된 듯하다. 벌써 같은 도시를 9번째 찾는다. 독일에서 때가 되면 하이델베르크를 찾듯이 그렇게 늘 이 도시를 찾고 똑같은 장소에 가고 했던 비슷한 것을 또 한다. 비슷한 생활이 중첩되면서 이 도시는 꾸덕꾸덕한 나의 일부가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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