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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일전에 총장님이 내 아버지의 가난한 죽음에 화한을 보내주신 일이 있다. 그때 나는 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분의 조교 업무를 볼 때면 오만가지 사람들이 방문하는데 심지어 책을 팔러 온 사람도 그냥 돌려 보내는 법이 없었다. 굳이 자신의 집무실에 불러들여 생활고의 고충을 다 듣고 돌려보내시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의 삶을 가까이 옆에서 지켜 보면서 높은 자리에서 저정도의 순전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나는 잘 안다. 내가 지나온 길을 보면서, 그 길이 미천한 나를 중심부로 이끌고 가는 것이 보인다. 사실은 주변부와 중심부를 오고 가는 운동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그 운동 속에 내가 잊지 말아야 하는 단 하나의 사실은, 내가 일천하다는 것이다. 그..
계속 안개 낀 낮과 밤이 이어진다. 전혜린의 수필에 나올 법한 저녁의 거리를 걸어 집으로 온다. 오늘은 김 교수님의 발표가 있었다. 우간다에 고위급의 신분으로 간 그는, 한 우간다인의 말을 듣고 인생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당신은 진짜 우간다인의 삶이 어떤지 대체 알기나 하는가?" 그 다음날 그는 사표를 내었다. 그리고 빈민촌으로 향했다. 오늘 그의 발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서 시작하여 그가 아프리카에서 경험한 신학의 여정을 아우르고 있었다. 나는 이 궤적이야말로 우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성육신'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러면서 칼 바르트의 말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부엉이와 박쥐가 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듯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 을 해석학적으로 뒤집어서 제시하였다: "우..
"우리는 목적들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목적들을 달성하는 수단들에 대해 숙고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III, 5. 1112 b12 의사는 자신이 낫게 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고, 연설자는 설득을 시켜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으며, 정치가는 좋은 법칙들을 확립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는다. 각자는 하나의 목적을 설정하자마자, 어떻게 어떤 수단으로 그것을 실현할 것인지 검토한다. 폴 리쾨르, 타자로서 자기 자신, 234-235. 여기서 숙고는 프로네시스, 곧 실천적 지혜 (라틴학자들은 이 낱말을 prudentia로 번역했다)가 추구하는 길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프로네시스의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기 위해 추구하는 길이다. 폴 리쾨르, 236 실천들은 사회적으로 그 구성적 규칙들이 확립..
아침에 미주 장신대의 총장님을 잠시 만났다. 적당히 소탈하고 적당히 말수가 적은, 목회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내가 연구하는 화해의 주제에 대해 매우 관심을 보이셨던 것 같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면서 앉아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대화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그의 말에서 목사로서의,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오후에 세미나가 있어서 오전에 예나 도서관에서 후설에 대한 논문을 조금 진행시켰다. 나는 목사로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기에 도서관에 앉아서 피로감 없는 쾌청한 연구를 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신대원 입시 때에는 물리적인 조건보다는 심리적인 조건이 열악했다. 마음의 구름이 끼지 않은 날이 독일의 맑은 하늘처럼 일년에 몇 번 없었던 듯 하다. 그 어떤 학자보다도 에드문트 후설은..
자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힘의 부여도 필수적이지만, 스승의 방향제시가 명백한 현실성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믿어야 한다. 이해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변곡점을 찍는 동력이 점진적 이해의 증강에서 나오는 것은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나오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믿어야 뛰어넘을 수 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스스로를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는 지금까지의 경험의 적분값이지, 그것을 넘어서는 확장적 힘을 담지하지 않는다. 후설은 (S. 447)에서, 시간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것(Ding)은 스스로 방향지움 (Ding in seiner Orientierung)이라는 표현을 다음 줄에서 곧바로 수정하였다. 그것 스스로가 자신의 변화를 방향지우지 않고, ..
일본의 와세다 대학 화해연구소 소장이 우리 연구소를 방문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한일관계의 갈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일본 측의 시각이 어떻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서도 눈 앞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직면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상기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교수는 calm down해달라고 내가 질문하기도 전에 나에게 부탁을 했다. 화해의 프로세스를 위해 감정에서의 detachment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감정도 하나의 컨텍스트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내가 반박해야만 했던 두가지는, 소녀상 설치가 정치적인 활용이 된다는 그들의 견해와 교과서의 우편향적인 역사 기술에 대한 문제였다. 소녀상 설치 문제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memory activism에 속하는, 과거에 무엇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