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과거의 흔적이 현재를 만나면 기억이 재구성된다. 기억 뿐 아니라 현재도 재구성된다. 간사이 공항에서 나오며 나는 교수님과 처음 컨택을 하던 때와, 교수님과 함께 이곳으로 향하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의 나와 기억 속의 두 나는 모두 같은 신칸센 안에 있다. 태풍은 가고시마에 머물고 있었다. 신칸센은 당장 운휴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일본 뉴스는 말하고 있었다. 내 현재가 태풍이 갈겨대는 잭슨 폴록스러운 즉흥 추상화같이 여겨졌다.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움직이는 태풍의 추격을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세계는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 나 또한 운동하고 있으며 저 태풍처럼 자신의 바깥으로 뻗어나가며 존재한다. 태풍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듯이, 나 또한 무언가를 타고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도지역에 도착했다. 이십..

나의 미친 여행의 시작은 조각구름 하나에서 시작된다. 기도 중에 기억의 서랍에서 하나님은 하코다테를 꺼내어 보여주셨다. 주일저녁 설교의 메시지의 핵심은 '상자' 안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난카이 트로프 위험이야기가 나올수록 가족이 걱정되었다. 홋카이도 여행을 제주도 여행으로 변경했다. 가족여행 뒤에는 혼자 사흘간 교토에 가려 했다.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놓고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이전에 하코다테에서 만났으나 지금은 동경 부근에 계셔야할 목사님이 다시 하코다테에 계심을 발견했다. 나는 20년도 더 된 목사님의 메일 주소로 간단한 편지를 썼다. 다음날 바로 회신이 왔다. 나는 교토에서 하코다테까지 신칸센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는 8월 23일에 나의 여정을 이렇게 계획했다. "교토에 도착하면 난젠지..

바이마르의 지인이 늘 함께 마시던 카페에서 원두를 선물로 사왔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커피를 내렸다. 늘 함께 마시던 원두 중 하나인 과테말라였다. 책을 읽다가 잠시 잔에 손을 뻗어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 그 친구도, 바이마르 도서관도, 집 앞 아이스펠트 광장도, 헤르더 교회도, 괴테가 설계한 공원도 그 잔에서 시작됨을 느꼈다. 마들렌에서 시작되는 기억의 빅뱅처럼, 어딘가에 움추리고 숨어있던 기억들이 커피 향의 감각과 함께 일제히 기지개를 켰다. 아담 자프란스키는 하이데거의 세계화란 이와 같다고 묘사했다. 하이데거가 강의하던 교탁은 갈색의 딱딱하고 직선적인 어떤 물체가 아니다. 그 교탁은 쓰임새가 있는 교탁이며, 사람이 뒤에 서서 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탁이다. 내가 마신 커피는 과테..

아른헴 숙소의 집주인을 보자마자 나는 그의 눈에서 지성이 비추이는 것을 느꼈다. 네덜란드인들에게서 내가 자주 보는 눈빛이다. 어딘지 모르게 고독하고, 동시에 단호한 듯한 표정. 부드러움 대신 단단함을 선호하는 야성이 그 눈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느끼기에, 네덜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감각을 치열한 이성을 가지고 현실화를 이루고야 마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는 기후문제를 에너지전환에서 해결을 찾고자 하는 연구자이며 작가였다. 우리는 네덜란드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아른헴과 네이메헌의 역사, 그리고 Lely가 바다 위에 구현한 엄청난 간척지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Lelystad에는 그의 동상이 아주, 아주높은 곳에 홀로 고독하게 세워져 있는데, 화가 프리드리히의 Der Wanderer를..

아른헴에 다녀왔다. 사실은 북쪽의 흐로닝언에 가보고 싶었다. 네덜란드에서 방문하지 않은 곳들이 여전히 있지만 나는 늘 noord 쪽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더 큰 공허와 결핍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내게 되물었다. 그래, 거기까지 멀리 혼자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네 눈에 좋은 것을 보고, 네가 가고 싶은 만큼 멀리 가서 네 갈망을 채워도, 거기에 가서 너는 어떤 의미를 얻고자 하는가? 그 결핍은 내 안에서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러다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문득,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것을 나누고자 하는 갈망. 힘에 부치도록 더 내어주고자 하는 갈망. 레비나스의 말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