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더 가지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무언가를 더 가지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 자체가 불행이다. 자족하는 마음은 결핍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된다.사람은 지루함을 피해 소일거리를 찾는 본성이 있지만 행복 자체를 위해 일락을 추구하는 정신에는 쉼이 깃들지 못한다. 약간의 지루함은 오히려 창의적인 놀이의 동기가 되고 약간의 결핍은 생의 리듬을 담백하게 매듭짓는 마디가 된다.
그 프랑스인이 내 이름을 저녁, 하고 부를 때 나는 모든 윤곽이 흐물흐물, 뭉개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 프랑스 교수는 jo를 먼저 발음하고, ng가 자신의 나라에서 발화되는 방식으로 내 이름을 읽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jong hyuk종혁하고 발음할 것을 그 프랑스인은 jo nghyuk줘뇨끄라고 읽었는데, jong에서의 ng가 뒤로 밀려나면서 hyuk에 붙어서 마치 avingon*아비뇽의 ng처럼 새로운 화학작용이 일어난 것이다.안경을 벗고 사물을 보듯이, 나와 너 사이에 모호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가득할 때가 있다. 분명한 것들이 힘을 잃고 곤죽이 되고 으스러지고 비틀어지는 저녁의 시간이 올 때가 있다. 온갖 창조성으로 가득한 시간. ng가 jo 뒤에 붙어서 종이 되기도 하고, hyuk 앞에 ..
차차 독일 유학생활에 적응이 되어 가는 듯 하다. 최근에는 시내에 나가거나 돌아올 때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늘 읽던 자료를 공부하고, 고전어 수업 준비를 하면서 수업 시간을 기다린다. 일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 것을 본다. 그렇다고 나의 독일어가 유창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고전어 수업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음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꽤 나아지긴 했나보다. 무엇보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데에 있어서 단어를 덜 찾는 기쁨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같은 책인데도 앞부분을 보면, 이런 단어까지 몰랐나 할 정도로 상당히 심각한 어휘의 결핍의 흔적들이 보인다. 15개월 정도 지났는데, 고전어 하나는 끝나가고 있고, 새로운 고전어 수업과 병행하고 있는 ..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세계관, 또는 스스로의 준칙 정도라고 생각해두자.그런데 '이래야만 한다'가 점차 굳어지게 되는 것은 인간의 비극적인 습성인 듯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래야만 함' 때문에 부딪히거나 서로를 회피하게 된다. 그야말로 스스로의 준칙으로서의 세계관이 마치 법칙이 되는 양 행동하고자 하는 스핀이 너무도 자주 걸리는 것이다. 나 자신도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을 판단하거나 스스로를 옭아맬 때가 많다. 사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의해서 막다른 길까지 내몰리고 난 다음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없음에도 스스로가 만든 것이 돌처럼 딱딱하게 경화되기 전까지 마치 그러한 것이 있는 양 그 안에서 존재하고 ..
독일에 와서 변한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사는 대신 기존의 것을 수리해서 쓰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좀처럼 새로운 것을 사거나 하지 않고, 직접 수리하거나 공들여 관리하면서 오랫동안 기존의 것을 지니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덕분에 나도 컴퓨터 하판에서부터 시계 끈, 필통, 헤드폰의 솜에 이르기까지 고쳐서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는데, 이게 기분이 참 좋다. 한국에서 핸드폰을 2년 주기로 교체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소비, 소비, 소비로 가득채운 삶이었다. 사실 그러한 삶에는 기존의 것에 대한 애정은 별로 없는 것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만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 중의 하나가 삶에 연속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게 희한하게도 다시 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