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프랑스어가 중급 정도 되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제랄드 메이가 사람들이 사랑을 피하고 효율성을 택하는 이유를 사랑이 수반하는 vulnerability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본다. 내가 벌거벗겨지고, 연약함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랑. 사랑은 우리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해 십자가 위에서 뜨겁게 수치스러워지셨다. 한 교인이 일전에 나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초라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한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이 맥락이 아버지를 빗대어 말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말을 아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니오, 저는 초라하게 살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초라한..
"사람은 시인으로 이 땅에 산다" (dichterisch wohnt der Mensch). 시를 짓는 것이 단순히 헤매는 것이 아니고 건설을 통해 방황을 끝내는 것인 한, 시는 사람이 이 땅에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려면 언어와 나의 관계가 바뀌어야 한다. 언어가 말한다. 그때 사람은 언어가 자기에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언어에게 답한다. 그래서 훨덜린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시인으로 이 땅에 산다." 하늘과 신을 향한 마음과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실존 사이에 긴장이 유지될 때, 사람은 비로소 산다는 것이다. 시는 시를 짓는 재주 이상이다. 포이에시스(poiesis), 곧 창조이다. 가장 넓은 의미의 창조이다. 그런 뜻에서 시는 본래의 삶이다. 사람은 시인일 때만 산다.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공연장에서 오랫동안 계속되던 박수를 내가 멈출 때 다른 사람들도 멈추는 시점에서 문득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공통감각이란 게 생겨난 것일까. 어릴적의 나는 분명히 공통감각과는 거리가 먼 예민함과 엉뚱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사람이었다. 수채화의 물통처럼 검고 혼돈한. 그때의 나는 언제 박수를 쳐야하고 언제 마쳐야 하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무엇이 적당한 것이며 무엇이 넘치는 것이며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는 아이였단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자유와 절제 사이에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사이에서, 엉뚱함과 진중함 사이에서 나의 길이 형성된 걸까. 내 삶이 리셋이 되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아이가 넘치는 감성을 가지면서도 언어를 훈련하..
2년간의 고전어 생활이 내일부로 끝이 난다. 기초 문법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패러다임을 복습하는데 연습장에 서걱서걱 구부러진 옛 글자를 적는 기분이 슴슴하다. 통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는데 언젠가부터 통과가 목적이 된 공부를 했던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보았다. 과정이 아니라 목적만을 효율적으로 겨누는 삶은 지루할 정도로 약삭빠르다.네, 아무튼 통과가 목적인 공부가 아니라 공부가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었으면 한다. 최근에는 파스타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았는데 커피를 배울 때처럼 재밌다. 늘 성급하게 시작했다가 원리라는 것을 배우면서 차근차근, 넉넉하게 하는 것을 배우면서 실력이 성장한다. 저마다 걷는 길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빨리 달리는 것이 기쁨이고,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제는 저녁기도회에 세 명이 참여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중국인 친구가 기도회에 참여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서 헬라어 해석을 하는데 독일어로 헬라어를 배워서인지 독일어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침에는 헬라어 파싱(해석)을 하며 보내고 오후에는 주석 책을 참고하기로 했다. 문법적으로 까다로운 부분이 두 군데가 있었는데 충분히 시간을 기울이니 번역 성경이나 주석 책을 참고해서만은 알 수 없는 언어의 오묘한 뉘앙스 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문득 신대원 시절에 주석이나 번역본을 보지 말고 스스로 파싱하는 습관을 무엇보다 먼저 기르라는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많은 것을 참고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출발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텍스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