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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10월 30일의 수기, 순수함과 처참함 사이에서
논문을 쓸 때면 깊은 숲에 들어와 있는듯한 고요함을 느낀다. 실제로 이 장소는 깊은 숲과 같다. 삼나무처럼 곧고 지긋한 책들에 둘러싸여서 천천히 산을 오르듯 후설의 사유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적막함을 넘어서 고요함이 시작되면 내 영혼은 잠잠하게 빛난다. 늘 고요하게 내달리지는 못한다. 특별히 사람을 만나야 할 때 그렇다. 그럴 때마다 집 밖으로 달려나가지 못하는 큰 개처럼 끙끙거리곤 한다. 그런 나를 창조주는 무척이나 섭하게 여긴다. '자, 이제 제 일을 해야지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늙은 어머니만큼이나 서운해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나의 것을 주장할 수록 당신이 머물 공간이 내 안에서 줄어든다. 선물로 받은 시간이 허다한데도 그 빈 공간을 스스로의 것으로 채우려고 고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항복하기 전까..
오랑쥬 껍질 씹기
2019. 10. 30.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