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오랑쥬 껍질 씹기 (170)
저녁의 꼴라쥬
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문법 규정들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을 기술함으로써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색깔이 어떤 속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색깔언어는 어떤 규정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색깔의 속성에 대한 기술은 그 자체가 문법 규정들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그것들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 만약 그것이 문법 규정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마디의 헛소리이거나, 아니면 그 규정들이 피상적임을 보여줄 것이다. ( 53,55) 그러나 단어를 위한 우리의 규칙들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상 논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아니다'에 대한 우리의 규칙들이 올바른 것인가 아닌가, 또 그 단어의 의미와 일치하는가라는 질문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 완전해진다는 것 (고후 12:9)을 기억한다면, 오류 투성이인 인간을 하나님의 계시에 봉사하도록 만드는 가운데 여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의 상황에 자신을 맞추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성을 존중하시는 가운데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청하신다. 계시의 빛은 위로부터 수직적으로 우리에게 떨어지기보다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세상적인 매게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데, 성령께서는 책임적인 해석과 비판적인 수용의 과정에서 인간의 참여를 유도하신다. 계시에 대한 모든 인간의 증언이 모호성과 왜곡의 위험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계시가 수용되는 과정을 변증법적인 과정 dialectical pr..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가 감옥에 있기 전의 10년동안 나치 정권 치하의 공포와 고통 가운데서 사는 동안 교회와 신학이 배웠어야 할 것에 대해 감옥 안에서 성찰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에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경험이 남겨져 있다. 우리는 세계사의 위대한 사건들을 아래로부터 보는 법을 배웠다. 곧 버림받고 의심받으며 학대받고 힘없이 연약하며 억압받은 자들로부터, 간단히 말하면 고통받는 사람들의 시각으로부터 역사를 보는 법을 배웠다"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New York : Macmillan, 1971). p. 17.) 성경과 복음이 부유한 사람들만의 시각에서 읽혀지고 해석되는 것과 '아래로..
1Q84를 다 읽고 인간실격 한 권을 그 자리에서 독파해볼 심산으로 읽고 있는데, 요조를 보며 우시카와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그 반대겠지. 무라카미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으니 이 연역법은 신빙성이 더욱 있다. 암튼 우시카와 편이 나는 1Q84에서 제일 좋았다. 마지막이 너무 서글퍼서 눈물을 흘릴 뻔 했을 정도로. 나에겐 가장 인상적이고 직관적으로 다가노는 캐릭터였다. '익살'로서 자신의 차갑고 조용한 내면을 가리는 요조는 내 내면에 큰 공명을 준다. 주파수가 너무 근접해서 내면이 뒤흔들릴 정도다. 다행인 것은 내가 얼마전부터 익살을 진실함과 결합시키게 되었다는 것이고 나는 여기서 카타르시스와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페르소나(사회 역할적 가면)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강요되어지는데 여기서 거짓으로 ..
꼭 50년 전의 그날, 4월 19일 나는 동숭동 캠퍼스의 벤치에 막막한 기분에 젖어 혼자 멍하고 앉아 있었다. 방금 많은 학우들이 교문 밖으로 구호를 외치며 뛰어나가 교정은 거의 텅 빈 것 같았다. 내가 민주주의며 정의와 자유를 생각하면서도 시위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한 장면을 되씹고 있었다. 돈암동에서 대학로가는 버스를 타고 혜화동에 이르렀을 때 한떼의 고등학생들이 한바탕 놀이판에서 놀고 돌아오는 듯한 흥겨운 기분에 젖어 거리에서 낄낄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자못 마땅치 않았다.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부정을 규탄하고 있다면 저렇게 장난치듯 해서는 안된다, 참된 역사는 진지한 태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저렇게 우스꽝스런 모습이어서는 안된다고..
네덜란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군대개미같은 자전거행렬도, 한 블럭을 지날때마다 조우하게 되는 운하들도 아니었다. 다만, 땅을 삼킬 기세로 다가오는 가슴을 쓸어내릴듯하게 거대한 구름들이었다. 내 시야에는,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구름이 점거한 풍경뿐이었다. 땅은 너무 낮았고, 가옥은 3층 이상으로 세운 것이 없고, 운하는 실핏줄처럼 미세했다. 보이는 것은 구름 뿐이었다. 나는 라익스뮤제움에서 19세기 네덜란드 풍광화가들의 구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얀 반 에이크, 베르메르, 야코프 반 루이스달. 그들은 구름을 액자 속에 박제해 넣기로 정평이 난 거장들이라지만, 나는 그들의 박제된 구름이 액자 속에서 지금도 박살이 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온 참이었다. 금이 간 구름이라니, 낮은 땅..
예전에는 재즈피아노를 치고 싶었다. 피아노나 글이나 좋은 것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작업인 것이고, 메타포나 화음을 통해 그것들에 입체감을 형성시키는 작업이 너무 창조적이어서 좋았기 때문이다. 이어령씨는 그의 시 무신론자의 기도에서 작은 별 하나를 창조해내는 권능을 구했는데, 이것은 예술행위가 모든 방면으로 층을 입히는 입방체로의 창조과정임과도 무관하지 않다. 나는 요즘 재즈 기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소리의 레이어로는 건반보다 더 두터운 입방체를 만들어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반짝반짝이는 단단하고 부드러운 입방체. 그것은 별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시를 쓰는 것은 어렵다. 시를 포기하고, 쓰기를 수없이 반복해 왔지만 결국 결론은 정직하게 시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시에 대한 부정의 소리를 항상 들어왔다. (이 타성은 언제나 우리를 시로부터 우회하게 한다) 하지만 너는 변명할 수 없다. 사람들이 너에게 에세이를 잘 쓴다, 단편을 잘 쓴다, 에세이를 써라, 단편을 써라, 말한다 해서, 그리고 시를 잘 쓴다, 시를 써라, 라고 말하지 않는다 해서, 네가 시로부터 도망한 것을 변명할 수는 없다. 좀 더 고통스러워져봐라, 좀 더 감내해봐라, 좀 더 끈질겨보고, 좀 더 섬세를 향한 박피작업을 견뎌봐라. 시는 정직한 자의 것이다. 시는 진실을 외치고 말하고 선포하고 노래하고 싶어한다. 너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알고는 있다. 너의 안에 시가 있으며,..
Midway Message from the Gyre These photographs of albatross chicks were made in September, 2009, on Midway Atoll, a tiny stretch of sand and coral near the middle of the North Pacific. The nesting babies are fed bellies-full of plastic by their parents, who soar out over the vast polluted ocean collecting what looks to them like food to bring back to their young. On this diet of human trash, eve..
Thelonious Monk의 Blue Monk를 듣고 있다. 피아노는 확실히 물의 악기라는 생각이 든다. 타건을 할 때마다 건반 위에 파문이 돈다. 파동들이 고리처럼 서로 걸쳐질 때 협/불협의 하모니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몽크는 기하학적 파문을 추구했었을 것이다. 예전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므로 재즈의 진동으로 스스로의 내부를 채우곤 했다. 많이 울던, 우울했던 시기를 보냈고 나는 점차 그 비슷한 진동을 찾아 헤맸다. 먼저는 라디오헤드였고 그 이후로는 마일스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 그리고 숱한 피아니스트들이었다. 그 시절 내 안을 울음으로 가득 채웠던 것 같다. 그 물이 내 안에 가득 차는 일, 울음의 여진을 계속 지속시키는 일을 나는 스스로 비슷한 진동의 음악을 꼴라쥬해가며 수행해갔다. 울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