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오랑쥬 껍질 씹기 (176)
저녁의 꼴라쥬
나의 유학의 마지막은 기차여행이었다. 베를린을 거쳐 함부르크에 도착한 나는 코펜하겐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기차는 북독일에서 기술상 문제로 정차했다가 접경지역을 지나 활처럼 생긴 덴마크 반도를 가로질렀다. 내 기차는 29유로짜리였고 숙소는 40유로짜리였다. 가진 것이 없어도 떠나고자 하는 열망만으로 시작되는 여행이 있다. 뉴욕에서 1불짜리 핫도그를 파는 스트리트를 찾아 헤맬 때와 자전거로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네덜란드 도시에서 60센트 짜리 빵을 사먹던 때가 있다. 고생은 다 이야기거리가 된다.결핍에서 생겨나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독일 골목 허름한 빵집의 빵냄새, 등이 굽은 안토니오 씨가 화덕에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꺼내어 아무렇게나 6등분하여 내놓고 에스프레소를 낡은 머신에서 뽑아 마..
일본 일주 여행에 가져갔던 소설을 방금 끝까지 읽었다. 삿포로로 향하는 주인공의 집념에서 나는 동질감을 느낀다.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던데 나는 1인칭 서술 시점의 덤덤한 그 감각 자체가 좋아서 종종 읽는다. 그는 교토 태생이라고 했다. 나는 늘 교토로부터 일본 여행을 시작하는 편인데 혼자로부터 출발해서 사람들을 지나가는 여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혼자서 출발한 일주 여행을 마치고 2주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모시고 교토에 갔다. 온천에 모시고 가서 나는 휴게실에서 만화책을 읽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스시를 먹고 난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블루보틀에 갔다. 니시키 시장 옆구리에 있는 이 건물은 1층에 오래된 자전거 가게가 있어서 로컬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를 가지고 드나드는 공간에 함..
5시에 눈이 떠졌다. 숙소 근처의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청수사와 난젠지 일대를 산책했다. 수로각 아래 앉아 한참을 빗소리를 들었다. 정주하기 위해 온 여행에서 나는 이 땅의 것들의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지나가야 다가오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교토에 머무를수는 없다. 거대한 수증기가 나를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지만 위협적인 바람을 피해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향했다. 거센 비로 인해 나고야 부근에서 발이 잠시 묶여 있었지만 비교적 무사히 도쿄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는 내가 건너온 도카이선을 운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우연의 일치인지, 내 트랙리스트에는 파도의 포말이 그려진 힐송의 독일어 버전이 있었고 이날 나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을 보았다. 우버를 타고 기요스미 지역..
과거의 흔적이 현재를 만나면 기억이 재구성된다. 기억 뿐 아니라 현재도 재구성된다. 간사이 공항에서 나오며 나는 교수님과 처음 컨택을 하던 때와, 교수님과 함께 이곳으로 향하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의 나와 기억 속의 두 나는 모두 같은 신칸센 안에 있다. 태풍은 가고시마에 머물고 있었다. 신칸센은 당장 운휴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일본 뉴스는 말하고 있었다. 내 현재가 태풍이 갈겨대는 잭슨 폴록스러운 즉흥 추상화같이 여겨졌다.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움직이는 태풍의 추격을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세계는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 나 또한 운동하고 있으며 저 태풍처럼 자신의 바깥으로 뻗어나가며 존재한다. 태풍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듯이, 나 또한 무언가를 타고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도지역에 도착했다. 이십..
나의 미친 여행의 시작은 조각구름 하나에서 시작된다. 기도 중에 기억의 서랍에서 하나님은 하코다테를 꺼내어 보여주셨다. 주일저녁 설교의 메시지의 핵심은 '상자' 안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난카이 트로프 위험이야기가 나올수록 가족이 걱정되었다. 홋카이도 여행을 제주도 여행으로 변경했다. 가족여행 뒤에는 혼자 사흘간 교토에 가려 했다.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놓고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이전에 하코다테에서 만났으나 지금은 동경 부근에 계셔야할 목사님이 다시 하코다테에 계심을 발견했다. 나는 20년도 더 된 목사님의 메일 주소로 간단한 편지를 썼다. 다음날 바로 회신이 왔다. 나는 교토에서 하코다테까지 신칸센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는 8월 23일에 나의 여정을 이렇게 계획했다. "교토에 도착하면 난젠지..
바이마르의 지인이 늘 함께 마시던 카페에서 원두를 선물로 사왔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커피를 내렸다. 늘 함께 마시던 원두 중 하나인 과테말라였다. 책을 읽다가 잠시 잔에 손을 뻗어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 그 친구도, 바이마르 도서관도, 집 앞 아이스펠트 광장도, 헤르더 교회도, 괴테가 설계한 공원도 그 잔에서 시작됨을 느꼈다. 마들렌에서 시작되는 기억의 빅뱅처럼, 어딘가에 움추리고 숨어있던 기억들이 커피 향의 감각과 함께 일제히 기지개를 켰다. 아담 자프란스키는 하이데거의 세계화란 이와 같다고 묘사했다. 하이데거가 강의하던 교탁은 갈색의 딱딱하고 직선적인 어떤 물체가 아니다. 그 교탁은 쓰임새가 있는 교탁이며, 사람이 뒤에 서서 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탁이다. 내가 마신 커피는 과테..
아른헴 숙소의 집주인을 보자마자 나는 그의 눈에서 지성이 비추이는 것을 느꼈다. 네덜란드인들에게서 내가 자주 보는 눈빛이다. 어딘지 모르게 고독하고, 동시에 단호한 듯한 표정. 부드러움 대신 단단함을 선호하는 야성이 그 눈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느끼기에, 네덜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감각을 치열한 이성을 가지고 현실화를 이루고야 마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는 기후문제를 에너지전환에서 해결을 찾고자 하는 연구자이며 작가였다. 우리는 네덜란드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아른헴과 네이메헌의 역사, 그리고 Lely가 바다 위에 구현한 엄청난 간척지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Lelystad에는 그의 동상이 아주, 아주높은 곳에 홀로 고독하게 세워져 있는데, 화가 프리드리히의 Der Wanderer를..
아른헴에 다녀왔다. 사실은 북쪽의 흐로닝언에 가보고 싶었다. 네덜란드에서 방문하지 않은 곳들이 여전히 있지만 나는 늘 noord 쪽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더 큰 공허와 결핍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내게 되물었다. 그래, 거기까지 멀리 혼자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네 눈에 좋은 것을 보고, 네가 가고 싶은 만큼 멀리 가서 네 갈망을 채워도, 거기에 가서 너는 어떤 의미를 얻고자 하는가? 그 결핍은 내 안에서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러다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문득,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것을 나누고자 하는 갈망. 힘에 부치도록 더 내어주고자 하는 갈망. 레비나스의 말처..
지금은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꼭대기 층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밤공기를 쐬며 독일 회사에서 나온 요거트를 먹는 중이다. 이 도시는 내가 지도교수님과 콘탁을 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들어온 독일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니 ‘처음 들어온 곳으로 마지막 독일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나의 처음에 끝의 씨앗이 이미 있었던 것일까. 그때 나는 몰트만 교수를 튀빙엔에서 만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예나로 떠났었는데, 이제는 유학의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 사람의 앞길은 도무지 알 수가 없기에, 시작에 그 끝의 씨앗이 존재한다는 말은, 미래로 나아가고, 과거를 회상하는,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지는 가운데에만 존재하는 인간의 시간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한계 관념으로서의 신적인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
6월에 워크샵 참석차 파리에 다녀왔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신학부 근처인 5구 지역에 숙소를 잡았다. 파란 대문을 들어가면 건물들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안뜰이 있고 울퉁불퉁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파리의 가정집이었다. 도착한 월요일 우리는 근처 카르푸에서 생수와 빵, 잼 등을 사고 동네를 산책했다. 집 앞 거리에는 분수가 있었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쉬고 있었다. 적당히 활기찬 길거리와 적당히 한적한 동네 골목을 모두 가지고 있는 좋은 거주지역이었다. 화요일부터 나는 워크샵을 시작했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파리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이었다. 수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발표를 하고 아내를 만나러 오페라 지구로 간 그날, 집주인에게서 집 근처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고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