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오늘부터 출근하는 길에 지하철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역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님에도 자전거를 매어두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리에 무거움이 느껴진다. 그동안은 쉬는 날이나 저녁 시간에 짬짬이 자전거를 타왔는데, 쉬는 날이 없어지게 되면서 나의 자전거는 게으른 주인이 산책을 포기한 개처럼 현관 앞에 한동안 매여 있었다. 가을도 눈깜짝하면 지나가고, 은행잎과 플라타너스잎이 거리에 모자이크처럼 빼곡이 쌓일텐데, 그전에 부지런히 타두지 않으면 이 개는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다. 예전에 진돌이(키우던 진돗개의 이름이다)를 오랫만에 산책시킬 때마다 녀석의 목줄에 거무튀튀하게 먼지가 끼여 있는 것을 보고 미안해 했었는데, 이 자전거의 하얀 프레임에도 눅눅한 먼지가 끼어 있는 것이었다. 미남 진..
인류는 작은 공 위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그러나 때때로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한동안 시고 소설이고 다 쓰기 싫을 때가 있었다. 아니면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재밌는 것이, 우리는 자신감이란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응집시키고 응고시켜서 이루어내야 하는 어떤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잘 해내지 못한다. 주변에는 천재성이라고 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자신감이 매우 부족한 것은 아닌가, 라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신에게서 오는 것인가, 나에게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타자에게서 부여받는 것인가.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타자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노래했다. 나는 신과 자아와 타자의 역할을 분리하고 싶지 않다. 이 삼각형은 어떤 고리의 순환을 이루냐면, 내가 타자를 도울때 타자는 힘을 부여받고, 역으로 ..
너의 눈빛이 변했다 지난날 너의 불빛은 어두웠으나앞이 안 보이는 가난의 거리도 어두웠으나네 상처 난 마음에는 붉은 꽃이 빛났고네 젖은 눈동자에는 새벽 별이 빛났다 너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 네 눈동자는 불타고 있다주식 시세와 아파트 시세를 따라 오르내리는 네 눈빛타인의 시선과 TV 드라마를 따라 늘어져 가는 네 눈빛 네 빛나던 눈동자엔 지금 빛이 없다 맑은 빛을 키우던 네 어둠은 어디로 갔느냐청보리 싹으로 빛나던 네 겨울은 어디로 갔느냐떨리는 손을 맞잡던 네 슬픔은 어디로 갔느냐 너의 눈빛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