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올 여름에는 드레스덴에 스치듯 다녀왔다. 열흘 정도 머무르다 왔는데 원래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4주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사정이 생겨서 계획된 체류의 반 정도만 머물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삶에서는 작은 순간들Ausblick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작은 순간들을 통해 그것이 나에게 하는 훈계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지혜를 얻게 되는 때가 있다. 나의 독어 선생인 Olgar는 내가 반복되는 단어들을 이니셜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이를테면 spazieren gehen을 s.g.라 쓴다던지 하는 것들) "Du bist faul! Du musst fleissig sein, wenn du lernst!'(너 너무 게을러! 공부할 때에는 부지런해져야지!) 라고 웃으며 책망한 적이 있다. '나는 어짜..
최근에 아침에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출근해서 마시고 있는데, 일주일 전부터 아메리카노에서 산패된 원두 맛이 나고 있다. 로스팅한지 기간이 많이 지났나 보다. 사실 싼 맛에 알면서도 마시고 있지만, 산패된 원두를 2500원에 마시는 것은 그다지 싼 가격은 아닌 것 같다. 일전에 네덜란드 제베나르에 갔을 때, 나는 친구에게 '더치커피'가 있냐고 물었다. 친구가 준 것은 '한국의' 더치커피가 아니라 그냥 Dutch에서 파는 커피였다.(네덜란드에서 커피가 날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 커피는 분쇄된 상태로 300그람정도 포장되어 판매되는 커피였다. 그런데 지금 카페에서 사 마시는 모닝 아메리카노가 그 맛이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커피를 맛으로가 아니라 추억으로 마시는 중이다.공교롭게도 '산패된' ..
어제 밤에 돌아오는 길에 중고서점에서 히라이켄의 중고음반을 두장 구매했다. 라는 타이틀의 음반이었는데 리스트의 마지막에 라는 곡이 있었다. 동요 곡이라 귀에 익은 멜로디를 팔세토 창법으로 부르니 사뭇 곡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할아버지만큼이나 오래된 100년 된 시계. 이제는 하늘에 올라간 할아버지. 그리고 이 시계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는 노랫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피안의 세계에 대해 새롭게 눈이 열리게 되는 듯 하다. 단지 이 땅의 일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생명의 탄생,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직관적으로, 그리고 '원본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질직관은 어느정도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
아버지의 외로운 다음카페에 들어가보았다. 조회수도 몇 없고 댓글도 없는 글들이 가득하다. 던 그 글 앞에서 유난히 눈물이 흘렀다.아버지를 찾아뵐 때 언덕진 근처 공원으로 휠체어를 밀어올려 드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아파트 단지 앞 트럭에서 과일장수가 팔던 사과 세 덩이 아버지 무릎 위에 놓고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 한덩이씩 비둘기와 같이 먹고, 아버지와 한참을 수다를 떨곤 했다. 아버지의 외로운 카페에 들어가 외로웠을 아버지 생각하니 더더욱 사무친다. 불꺼진 한밤 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 로비의 컴퓨터에서 몇 자 끄적였을 아버지. 어두운 밤 소스라치게 깨어나 하나님 살려달라고 작고 약하게 기도했을 아버지.아버지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마를 만지고 얼굴을 보았다. 의식..
오늘은 출근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래서 오늘은 자전거를 집에 매어두고 왔다. 비오는 날 진돌이를 집에 매어두고 나갔다 오면, 누런 털 냄새가 그렇게 진동하곤 했다. (냄새가 진동한다는 표현은 참 문학적이다. 냄새는 특유의 파장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아팠다. 누워서 책을 읽곤 하는 나쁜 습관 때문인 것 같다. 어제는 누워서 오르한 파묵의 과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의 홈스 롤스턴3세의 '비움과 자연' 부분을 읽었다. 앉아서는 키에르케고르와 레비나스, 성경을 읽었고, 를 마침내 다 읽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무구함이 불안을 만나게 되면서 자유를 체험하게 된다고 말했고, 에서의 홈스 롤스턴은 '자발성'이라는 것, '자유'라는 것이 도덕과 연계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도덕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