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Oh Lord, You're beautifulYour face is all I seekAnd when your eyes are on this child,Your grace abounds to me. Oh Lord, please light a firethat once burn bright and clearReplace the lamp of my first lovethat burns with holy fear. I want to take your Wordand shine it all aroundBut first help me just to live it, Lord.And when I'm doing wellHelp me to never seek a crownFor my reward is giving glory..
어수룩하지만 진중한 것이 좋다. 내가 말하는 어수룩함은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 아니다. 준비가 된 뒤에는, 경직된 완벽주의를 버리라는 것이다. 다윗처럼 어수룩하게, 하던 대로, 가장 잘 하는 것으로, 가장 잘 맞는 옷을 입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톰은 노래를 부를 때, 삑사리를 내는 때가 간혹 있었다. 운지가 잘못 되어 현에서 탁한 소리가 나는 때도 있었지만 그는 그대로 갔다. 그런데 나는 왠지 그것이 참 좋았다. 어수룩해서 좋았다기 보다는, 그 어수룩함 속에서만 번뜩이는 영감의 종류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말끔한 완벽성을 그래도 원한다면, 나는 말하고 싶다. 만약 그대가, 어수룩함 속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도 괜찮다면, 가장 중요한 가치 하나를 잃어도 괜찮다면, 그렇게 하라. 그..
가장 온전하게 설 수록 가장 자유하다. 온전히 설 수록 더 많은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이것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은혜이다. 그러므로 엎어져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강압의 명령이 아니라 청유형으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히 서자. 그러나 타자에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더 좋지 않을까?'라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참된 견책은 "성령으로만" 하나님의 때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나 또한 그 죄의 파편을 뒤집어 쓰게 된다. 이것은 죽이는 문자, 정죄의 원리이다. 내가 깨끗하다 생각하고 남을 비판하는 순간, 율법은 다시 나를 정죄한다. 내 눈에서 들보를 뺄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 후에 "밝히 볼 때만이" 우리는 충성된 친구..
온 바다를 말려 소금을 만들듯 나도 자유를 내놓아 작은 결정結晶이 되고 싶다 오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청순한 소금이 되어 모든 썩음의 품 속에 들어가 대신 썩어 생기를 주고 모든 밍숭맹숭함 속에 들어가 대신 죽어 맛을 주는 그런 작은 결정決定이 되고 싶다 눈물을 말리면 소금이 된다 소금이 녹으면 눈물이 된다
나는 사실 노래에 있어서 표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사람이다. 톰 요크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할 때마다 양쪽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흐느끼는 것이 정서표현에 있어 굉장한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그의 라이브를 보면서 비로소 숙고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에 찬양인도를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항상 활짝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지인이었던 성악 출신 자매가 예배가 끝나고 "표정은 발성에 있어서 굉장한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은 기쁨을 표현하고, 큰 소리와 열린 음을 내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표정이 발성의 확성기 역할을 해주는 것이리라. 나는 톰 요크의 표정이 이를테면 온갖 비애와 멜랑꼴리함, 냉소와 비판의 믹스츄어에 대한 훌륭한 증폭기 역할을 ..